본성과 양육 논쟁이 사회에 끼친 양 극단의 사례로 공산주의와 나치즘, 마르크스 주의와 나치주의가 손꼽힌다. 공산주의의 사회 개조론은 양육을, 나치즘의 생물학적 결정론은 본성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두 이데올로기는 20세기에 인류를 개조하려 했지만 대량학살의 범죄를 저지르며 자멸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생물학에 입각한 인간 본성 개념을 적대시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환경을 만드는 만큼 환경도 인간을 만든다"고 말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환경을 바꾸는 데 혈안이 되었지만 그들의 혁명은 끝내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편 나치즘은 인간 본성의 생물학적 개념을 악용한 사례이다. 히틀러는 열등한 민족을 없애는 것은 자연의 지혜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고등 인종인 아리안 민족의 피가 하등인간의 피와 섞여서는 안된다."고 썼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다른 이름인 우생학은 생물학적 부적격자, 이를테면 정신이상자, 저능아 또는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조직적으로 제거하려는 소극적 우생학과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형질을 가진 적격자의 수를 늘리려는 적극적 우생학으로 나뉜다. 우생학의 역사는 매우 길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일급 우량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뛰어난 남녀를 부부로 많이 짝지어 주고 가장 열등한 자들끼리의 혼인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만개한 우생학 운동이 독일로 건너가 나치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생학은 1950년대에 완전히 숨을 죽인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 학살에 충격을 받은 행동과학자들은 환경결정론을 지지하면서 유전과 행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을 포기했다. 1972년 미국 우생학회는 만장일치로 60여년간 사용한 확회 명칭을 사회생물학 연구학회로 바꾸었다. 본성과 양육 논쟁에서 양육 쪽이 일방적 승리를 거둔 셈이다.
이러한 추세는 1958년 미국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에 의해 극적으로 반전되기 시작한다. 촘스키는 누구나 그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을 얼마든지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언어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경험으로부터 언어 규칙을 학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촘스키가 치켜든 선천론의 깃발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승계했다.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생물학적 적응의 산물로 간주한다. 1992년 심리학자인 레다 코스미데스와 인류학자인 존 투비 부부가 함께 편집한 <적응하는 마음>이 출간된 것을 계기로 진화심리학은 하나의 독립된 연구분야가 된다. 윌리엄 제임스의 본능에 대한 개념이 1세기 만에 새 모습으로 부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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