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열린 사회로 가는 길

팔락 2010. 5. 14. 13:01

우리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사회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닫힌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에 그대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국가 유기체 이론이나 생물적적 이론은 상당한 범위에까지 닫힌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 닫힌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반(半)생물학적 유대에 의해 함께 묶여 있는 사회이다. 이 사회는 사람들이 노동의 분업이나 상품의 교환과 같은 추상적인 관계에 의해서 상호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만져보고 냄새 맡고 바라보고 하는 구체적인 육체적 관계에 의해 맺어진 사회이다. 계급을 포함한 닫힌사회의 제도는 신성불가침한 금기이다.

 

열린사회는 이와 반대로 유기체적인 특성이란 없는 추상적인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인간 상호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는 비인격적인 사회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열린사회에서는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거의 갖지 않거나 전혀 갖지 않고 익명과 고립 속에서, 그리고 그 결과 불행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사회적 욕구를 갖고 있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의 이행이란 분명히 인류가 겪은 가장 심원한 혁명 중의 하나이다. 닫힌사회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이 이행은 참으로 철저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서구문화가 그리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신념, 평등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념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자는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그는 이 신념을 위해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페리클레스처럼 아테네 민주주의 지도자가 아니었으며, 프로타고라스 같은 열린사회의 이론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아테네와 아테네의 민주주의적 제도에 대한 비판자였다. 그러나 그는 참다운 평등주의자였고, 진정한 개인주의자였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재능 있는 제자였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얼마 안 가 그를 배반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공개적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했기에 플라톤은 그것을 닫힌사회에 대한 신념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이 일은 어려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은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그의 닫힌사회의 해석과는 매우 다르며, 그가 소크라테스를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으로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인격적인 성실과 타협하기를 거절했다. 플라톤은 그의 비타협적인 화포 청소에도 불구하고, 내딛는 단계마다 그의 성실성과 타협하며 나아갔다. 그러므로 우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것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플라톤의 사회학적 진단이 우수했을지라고,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도 그가 추진했던 치료법이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소위 닫힌사회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천국에의 꿈은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다. 일단 우리의 이성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우리의 비판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상, 개인적인 책임의 요구와 더불어 지식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상, 우리는 부족적 마술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국가로 되돌아갈 수 없다.

 

 지식의 열매를 먹은 자는 천국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부족주의의 영웅적 시대로 돌아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종교재판에, 비밀경찰에, 낭만화된 깡패행위로 가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성과 진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야만적이고 포악한 파괴로 끝내고 말 것이 확실하다.

 

 자연의 조화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길 전체를 다 가야만 한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가야 한다. There is no return to harmonious state of nature. If we turn back, then we must go to the whole way - we must return to the beasts.

 

 우리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꿈꾼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일, 인간다움과 이성과 책임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위축되어 버린다면, 용기를 잃어버리고 긴장에 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단순한 결정을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강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위해 계획하면서 - 이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야만 한다 - 미지의 세계,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