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가랑비에 옷 적시다

팔락 2010. 5. 9. 02:09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의사들도 자신들의 정직성은 더럽혀질 수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의사들이 어떤 실험이나 절차를 수행한 댓가로, 환자들 일부를 임상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대가로, 옛 약에 비해 더 낫거나 안전하지도 않은 값비싼 신약을 처방한 대가로 수고료나 인센티브를 받을 때 마다 그들은 자신의 금전적 이해와 환자들의 복리를 견주어 본다. 그때 그들의 맹점이 균형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게 한 다음 정당화시킨다. "어떤 제약회사가 우리에게 펜, 메모지, 달력, 점심, 사례금, 소액의 컨설팅 비용을 제공하겠다는데 왜 안 되는가? 시시한 장신구나 피자 따위에 팔릴 우리가 아니다."

한 조사에서는 의사들이 큰 선물보다는 작은 선물을 윤리적으로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사협회도 이 사실을 인정하며 1건에 100달러를 넘지 않을 것을 전제로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의사들이 큰 선물보다는 작은 선물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제약회사들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사실이 의사들에 대한 마케팅 비용이 증가한 사실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1999년 121억 달러이던 것이 2003년에는 220억 달러로 증가했다. 시시한 장신구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빅 파마사가 작은 선물에 많은 돈을 지출한 까닭을 마케팅 담당자, 로비스트, 사회심리학자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선물을 받고 나면 은연중에 이쪽에서도 주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풀러 브러시사의 영업사원들은 이 원리를 수십 년 전에 이해하고 `발부터 들여놓기(foot-in-door)` 기법을 개척했다. 주부에게 작은 브러시를 선물로 주면 그녀는 당신을 문전박대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면전에서 문을 쾅 닫지 않으면 그녀는 당신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할 마음이 생길 것이고, 결국에는 당신의 값비싼 브러시를 사게 될 것이다.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는 오랫동안 설득과 유도 기법을 연구했다. 그는 하레 크리슈나(Hare Krischna)신자들이 공항에서 모금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관찰했다. 크리슈나 신자들이 지친 여행자들에게 헌금을 청해보아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그리서 더 나은 방법을 고안해냈다. 목표로 삼은 여행자들에게 다가가 꽃을 한 송이를 쥐어주거나 핀으로 재킷에 달아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꽃을 거절하고 돌려주려 하면 손사래를 치며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헌금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그들의 헌금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았다. 꽃 선물이 여행자의 마음속에 보답을 해야 한다는 부채를 형성해놓았기 때문이다. 선물에 어떻게 보답해야지? 작은 헌금으로..... 매력적이지만 원가에 비해 비싼 가격을 매겨놓은 <<바가바드기타>>를 한 권 사주는 것으로?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성(reciprocity)의 힘을 알았을까? 아마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상호성이 개입되면 자기정당화가 뒤를 따른다. "그렇잖아도 <<바가바드기타>> 한 권 구하고 싶었잖아. 어디보자."  꽃의 힘은 깨닫지 못한다. "그건 꽃일 뿐이야."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작은 기부라고 생각하면 되지. 이 유용한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데 드는 비용 정도인데 뭘."하고 가볍게 치부한다. 그러나 꽃의 위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들과 접촉하는 횟수와 그들이 뒤에 처방하게 되는 약의 총액 사이에 정(正)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도 부분적으로 그기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영업사원은 신약에 대해 정말 설득을 잘 하더군. 한번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환자들에게 잘 맞을지도 모르잖아." 크든 작든 일단 선물을 받고 나면 당신은 뭔가로 보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 과정이 시작된다. 그 뭔가가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고, 흔쾌히 들어주는 것이고, 상대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일지라도 결국에는 처방(의사)을 하고, 판결(판사). 표결(의원)에서 그들에게 유리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행위가 변했음에도 당신의 맹점과 가지정당화 때문에 당신의 지적, 직업적 성실성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생명윤리학자요 의학박사인 칼 엘리엇(Carl Elliot)은 작은 선물이 수령자를 옭아매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광범위한 글을 썼다. 그의 형제로 정신과 의사인 핼은 자신이 어떻게 대규모 제약회사의 대변자가 되어갔는지 말해주었다. 먼저 제약회사가 핼에게 어느 동네 단체에서 우울증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사회에 대한 봉사이니만큼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제약회사는 같은 주제로 병원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다음에는 우울증보다는 항우울제에 대해 말하라고 강연 내용에 대해 간섭을 하며 부추겼다. 다음에는 `금전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전국 순회 강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자기네 회사의 새 항우울제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말했다. 그 과정을 되돌아보며 핼은 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예를 들어 이런 거지. 회사에 다니는 한 여성이 파티에 참석했는데 사장이 "부탁하나 할까. 저쪽에 있는 남자한테 좀 잘해줘."하고 말하는 거야. 보니까 못생긴 것도 아니고, 당시는 누구에게 매인 몸도 아니어서 그녀는 "그러죠, 뭐. 잘해주는 게 뭐 어렵겠어요."하고 대답하지. 하지만 오래지 않아 비행기의 화물칸에 실려 방콕의 창녀촌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 그녀는 이렇게 말하겠지. "멈춰, 내가 동의한 건 이게 아니야." 하지만 그때 그녀는 이렇게 자문하는 거야. "매춘이 실제로 시작된 건 언제지? 그 파티에서가 아니었을까?"

오늘날은 도덕의 전문가들조차 그 파티에 가고 있다. 사냥개들이 잡아야 할 여우들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제약업계와 생명공학 업계는 특히 의사들과 제약회사들 사이의 이해충돌의 위험에 대해 쓰는 생명윤리학자들에게 컨설팅 비용, 도급 계약, 사례금 등을 제공한다. 칼 엘리엇은 동료들이 그 돈을 받고 정당화하는 모습을 이렇게 썼다. 기업 컨설팅의 옹호자들은 종종 업계에서 돈을 받으면 자신의 공정성이 손상되거나 윤리적 비판이 덜 객관적으로 될 수 있다는 주장에 격노한다. 생명윤리학자 에번 디렌조는 내게 `객관성은 하나의 신화`라고 말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성주의 철학에서 근거를 들었다. `어떤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그것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당신을 위해 부조화를 줄여줄 교묘한 주장이 있다. "완전한 객관성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니 차라리 컨설팅 사례금을 받는 게 낫다."는 것이다. 워턴 스쿨의 윤리 프로그램 담당자인 토머스 도널드슨은 윤리 컨설턴트와 한 회사가 재무를 감사하기 위해 고용하는 독립적인 회계회사들을 비교함으로서 이를 정당화한다(차라리 그들의 윤리를 감사하는 것이 어떤가?).

그것은 자기정당화를 위해서는 한번 써볼 만한 방법이지만 칼 엘리엇의 비판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그는 "윤리적 분석은 재무 감사와는 닮은 데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회계사의 범칙은 찾아내고 검증할 수 있지만 윤리 컨설턴트의 범칙은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정당한 이유로 마음을 바꾼 윤리 컨설턴트와 돈 때문에 마음을 바꾼 윤리 컨설턴트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정직성 때문에 고용된 윤리 컨설턴트와 회사의 계힉을 지지하기 때문에 고용된 윤리 컨설턴트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그런데도 칼 엘리엇이 씁쓸하게 말한 바와 같이, 아마 우리는 미국의사협히(AMA)의 윤리와 법률위원회가 의사들이 제약업계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과 관련한 윤리 문제에 대해 의사들을 교육하기로 한 방침을 마련한 것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교육 프로그램에는 제약업계가 여러가지 선물의 형태로 59만 달러를 지원했다. 지원에 참여한 업체는 엘리 릴리, 글랙소스미스클라인, 화이저, 미국제약그룹, 아스트라제니카제약, 바이엘, P&G, 와이어스-에이어스트제약이다.

-- 거짓말의 진화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