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두 개의 반구가 각기 다른 일에 전문화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비대칭성이 언어와 연관되어 있다.
좌반구는 말하는 소리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뿐만 아니라 말에 구문구조를 부과하는 일, 그리고 의미론과 연관된 대부분의 일에 특화되어 있다. 의미론은 의미의 파악과 관련된 것이다.
반면에 우반구는 말하는 것(구어)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언어의 더욱 미묘한 측면인 은유, 상징, 애매성 등에 관계한다.
좌반구는 인간의 가장 고차적인 특징인 언어의 창고이며, 생각의 대부분과 말하는 것의 전부를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주 반구 혹은 '지배적' 반구라고 부른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벙어리인 우반구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또 다른 특화는 시각 및 감정과 관계되는 것이다. 우반구는 시각의 전체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가령, 나무들을 보고 거기서 숲을 보는 것이나, 격한 상황에서 얼굴 표정을 읽으면서 적절한 감정으로 반응하는 것 등이 연관되어 있다.
우반구에 뇌졸증을 일으킨 환자는 곤경에 대해서도 마치 축복을 받은 듯이 무심하며 가벼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감정을 다루는 우뇌'가 없을 경우에, 그들은 자신이 상실한 것의 중요성이나 그 정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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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좌뇌는 논리적이며 정합성을 추구하고 추상적인 작업을 주도한다. 우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직관주의자다. 그리고 행동은 우뇌의 정보를 참고로 한 좌뇌의 결정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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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깨어 있는 매 순간 두뇌는 일련의 혼란스러운 감각 입력들로 넘쳐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정합적인 관점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점은 저장된 기억이 우리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 이미 참이라고 말해주는 것들로 입각해 있다.
정합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 두뇌는 세부적인 것들로 넘쳐나는 이런 입력들을 걸러내고, 그것들을 안정적이며 내적으로 일관된 '믿음 체계' 속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어진 증거에 비추어서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세계에 관해서 이미 존재하는 우리의 견해에 그것을 말끔하게 이어 붙인다. 나는 이런 일이 주로 좌반구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야기에 잘 들어맞지 않는 뭔가가 들어왔다고 가정하자.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한 가지 가능한 선택은 모든 대본을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모형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의 내용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위협이 되는 모든 정보들에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이내 혼란에 빠지고 불안정해질 것이다.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대신에 우리의 좌반구가 선택한 것은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을 무시하거나, 현존하는 구조에 맞게끔 왜곡해 변형시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이른바 프로이트적 방어기제에 깔려있는 본질적인 근거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부정, 억압, 작화증, 자기기만과 같은 것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일상적 방어기제는 적응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오히려 이는, 감각에 주어진 재료의 조합 가능성이 너무 많음으로써 야기되는 이야기의 조합폭증 때문에, 두뇌가 방향을 잃고 결정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에 대한 대가는 우리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체계 전체의 정합성이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로는 적은 편이다.
우리의 목적은 행동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우유부단함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결정이든 간에 그것이 옳을 가능성이 있다면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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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두 반구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좌뇌의 역할은 믿음체계나 모형을 형성하고, 새로운 경험을 그 믿음체계에 덧붙이는 것이다. 현재의 모형에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에 직면하면, 좌뇌는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프로이트 식의 부정이나 억압, 작화 등의 방어기제에 의존한다.
우뇌의 전략은 '악마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현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총체적인 정합성을 모색한다. 비정상적인 정보가 어느 정도 쌓여 일정한 임계점에 도달하면, 우리는 전체 모형을 완전히 수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시간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좌뇌가 항상 원래의 방식을 고수하려 하는 반면에, 우뇌는 비정상에 대한 '쿤 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제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항상 좌뇌가 승리한다.
--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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