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화

무용지용(無用之用), 울지 않는 거위

팔락 2015. 4. 9. 22:20
 

무용지용(無用之用)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고, 기름 등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이고, 옻나무는 칠로 쓰이기 때문에 잘린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만 알지, 쓸모없는 가운데 쓸모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 桂可食, 故伐之. 漆可用, 故割之.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장석(匠石)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의 사당 앞에 서 있는 상수리나무를 보게 되었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이고, 재어 보니 굵기는 백 뼘이나 되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만큼 높아 열 길 높이 위에 가지가 있었다. , 배를 만들어도 될 만한 가지만 해도 여남은 개나 되었다. 구경꾼이 저자를 이룰 만큼 많았지만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지나가 버렸다. 장석의 제자들이 충분히 그 나무를 구경한 다음 달려와서는 장석에게 물었다. “저희들이 오래전부터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녔지만 아직 이처럼 좋은 재목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볼 생각도 없이 지나가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만두어라. 그건 쓸모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요, 널을 짜면 곧 썩을 것이요, 그릇을 만들면 곧 깨질 것이요, 문을 만들면 나무진이 밸 것이요, 기둥을 만들면 좀이 먹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쓰지 못하는 나무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같이 수명이 긴 것이다.”(匠石之齊, 至於曲轅, 見櫟社樹. 其大蔽數千牛, 絜之百圍, 其高臨山, 十仞而後有枝. 其可以爲舟者旁十數. 觀者如市, 匠伯不顧, 遂行不輟. 弟子厭觀之, 走及匠石, , 自吾執斧斤以隨夫子, 未嘗見材如此其美也. 先生不肯視, 行不輟, 何邪. , 已矣, 勿言之矣. 散木也. 以爲舟則沈, 以爲棺槨則速腐, 以爲器則速毁. 以爲門戶則液樠, 以爲柱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故能若是之壽.)

 

이 두 이야기는 모두 <장자(莊子인간세(人間世)>에 나온다. 두 이야기 모두,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하며 쓸모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 같지만, 어떤 경우에는 쓸모가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를 망치는 경우도 있으며 쓸모가 없음으로 인해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울지 않는 거위>

 

장자가 숲을 가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꾼이 그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을 보고 까닭을 물으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자는 말했다. “이 나무는 재목감이 아니어서 천수를 누리는구나.”

 

산에서 내려온 장자가 옛 벗의 집을 찾아가자 벗은 반가워하며 머슴에게 거위를 잡아 요리하라고 일렀다. 머슴이 물었다. “한 마리는 꽥꽥 잘 울고, 다른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느 것을 잡을까요?” 주인은 울지 못하는 것을 잡아라고 했다.

 

제자들이 장자에게 물었다. “산 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 할 수 있었고, 주인집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쪽을 택하시렵니까?” 장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쓸모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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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중간을 택해,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이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아 인간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莊子 <山木(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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