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반과학적인 한의학의 '과학화' 사업

팔락 2014. 4. 1. 12:22

반과학적인 한의학의 '과학화' 사업

진짜 '과학화'가 되려면 효과 없는 진단과 치료를 걸러내야

 

한의학의 과학화’를 국가적으로 지원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도대체 ‘과학화’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과학과는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과학화란 무엇일까?

무턱대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방법이라면 믿고 쓰는 한의학과는 달리 현대의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말은 과학 이론을 배경으로 효과를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엄밀한 과정을 거쳐 검증을 통과한 치료법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다.

 

한의학을 과학화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음양오행 따위에 과학 이론을 가져다 붙여주지는 못하더라도 효과를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엄밀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치료와 진단이 효과가 없는지를 걸러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과학자들이 연구의 객관성을 확보하는데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로 ‘발표 편향 (publication bias)’이라는 문제가 있다. 연구자들이 실험을 해서 효과가 있을 때에는 논문을 발표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논문을 발표하기를 단념하고 연구결과를 폐기하는 경향에 대한 지적이다. 효과가 있다는 결과는 확률 상 드문 일이고 활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발표할 가치가 있지만, 효과가 없는 결과는 으레 그러할만한 확률인데다가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생각해 연구자들이나 학술지들 모두 발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두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다른 연구자들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해 연구자들의 노고와 연구비를 낭비하게 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실제로는 효과가 없지만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시도들에서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모두들 발표를 안 해 결과가 알려지지 않고, 우연한 확률로 드물게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타나 그것들만 발표된다면 전체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가짜’로 효과가 있다는 결과들만 차츰차츰 쌓이면 여러 독립적인 연구들을 종합해 효과를 판정하면 높은 수준의 근거를 얻을 수 있다는 ‘근거중심의학 (evidence-based medicine)'적 접근방식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효과가 없다는 결과들이 발표되지 않는다고 해서 의료행위에 당장 큰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 뒤에는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들도 발표할 가치가 생겨 어느 정도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의학은 그렇게 해서 효과 검증을 통과한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경우가 다르다. 한의학의 치료 방법들은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연구와는 반대로 ‘한의학의 과학화’ 연구에서는 ‘효과 없음’이라는 결과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이미 사용을 하고 있으니 효과가 없는 치료법과 부작용이 있는 것들을 가려내 폐기시켜야 발전할 수 있다.

 

‘과학화’와 반대로 가는 사상체질연구 사례

그럼에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한의학 연구는 발표 편향문제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한의학 연구 중에 돈을 많이 들이는 주제 중 하나인 사상체질을 보자. 현재 이제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사상체질 연구에 1500억 원의 국가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연구 목록에서도 이제마가 100여 년 전 주장한 사상체질론을 ‘과학화’하기 위해 90년대부터 많은 노력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사상체질을 진화론과도 연결시켜보고, 유전학과도 연결시켜보고, 3차원 영상을 찍어 얼굴 모양과도 대조해보고, 최근 부상하고 있는 장내미생물총과도 연결시키려 애쓰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3년 2월 18일자 “장내미생물 분석을 통한 한방변증 및 체질감별의 과학적 근거 수립”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의 서론 부분을 살펴보자.

 

-- 사상의학은 조선 후기 동무 이제마 의해서 사상인의 장부성리와 외형을 통한 사상체질론으로 정립된 한국의 독자적인 의학이다. 이제마 선생은 동의수세보원에서 체질진단법으로 체형, 용모, 성격, 행동의 변별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진단의 객관화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체형, 두면부, 생화학, 유전자, 진단기기, 설문지, O-ring test, 지문, 음성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체질 진단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되는 방법이라고 결론짓기에는 부족함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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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현재까지 사상체질 진단을 객관화시키려고 별의별 방안들을 테스트했지만 건진 게 없는 실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아, 그렇다면 혹시 사상체질 자체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었을까?”라고 의심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보고서는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또 새로운 방법으로 사상체질을 ‘과학화’ 해보겠습니다.”라는 각오가 담겨 있다. 연구한 꼴을 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피험자들을 두고서 전체적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결과가 나오니 성별을 쪼개고, 나이를 쪼개고, 이 질환에 대입해보고, 저 질환에 대입해보고 갖은 방법으로 ‘의미가 있다’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애를 쓴 모습이 보인다.

 

‘한의학의 과학화’는 밑 빠진 독에 혈세 붓기

이 연구팀은 이미 3억 2천만 원의 예산을 썼고, 2단계 연구 예산도 배정받은 입장이라 “조금이라도 사상체질 진단에 유효했다”라고 썼지만 나중에 또 다른 연구팀이 등장해 똑같이 “현재까지 사상체질 진단을 객관화시키려고 별의별 방안들을 테스트했지만 건진 게 없는 실정”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연구 예산을 타낼 것이 뻔하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한의학의 과학화’는 근거 없는 진단과 치료에 근거가 있다는 결론이 만들어질 때까지 세금을 퍼붓겠다는 의미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딱 이 경우다. 한 가지 더 일러두자면 현재까지 사상체질이 ‘과학화’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인데 이미 2005년부터 사상체질 진단기기를 개발하라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필이면 이제마가 조선에 태어나는 바람에 그가 뱉어놓은 근거 없는 혼자만의 주장을 중국전통의학의 아류인 기존 한의학과는 차별화 된 자랑스러운 ‘한의학의 독창성’으로 만들어내겠다고 이런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의 과학자들이나 한의학 연구 예산을 타다 쓰는 외부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과학자들 중에서도 ‘한의학의 과학화’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발상인지 알고 있음에도 ‘직장이 없어질까 봐’, ‘연구비를 타야 하니까’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맞춰가자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직접 관련이 없는 과학자들도 한심한 상황을 보면서도 동료의 밥벌이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한의학을 ‘과학화’ 하려면

‘이제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사상체질 연구에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천억원이 투입되고 있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제 2차 한의약발전육성계획'으로 한의학 연구에 1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일 한의학 연구 관련 미래창조과학부 보도자료에서는 한의학연 최승훈 원장이 “한의학에 근거해 개발한 천연물 신약의 경우 그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어 있다”는 둥, 해당 연구책임자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우리나라 전통의학인 한의학에 근거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어 있다”는 둥 안일한 소리만 하고 있다. 이렇게 답을 정해놓고 실험을 하는 짓은 과학이 아닌 사이비과학이다.

 

수은 중독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수은 치료도 세계 각지에서 수백 년 이상 이어졌었고, 최근에서야 심각한 발암물질로 판명돼 사용이 금지된 한약재도 있었고, 인삼조차 부작용이 드러난 사실들을 직시하며 현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한의학을 진짜 ‘과학화’하겠다면 한약의 부작용을 면밀히 조사해 알리고 효과 없는 치료를 폐기시키도록 방향을 바꾸게 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이 미친 짓을 말리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 강석하 (사이언티픽크리틱스 편집장,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