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경제에 관한 통계나 기사를 읽다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통계 조사의 결과가 나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의 행동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은 그럴 듯하지만 전제부터 단순하기 짝이 없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어떤 물건을 살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정부의 경제 정책에 관한 찬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 선택을 내린다. 때로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따라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복잡한 경우도 적지 않다.
‘행동경제학’은 이처럼 인간의 경제활동이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에 의한 심리적 결정의 결과임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새로운 학문인 행동경제학의 주요 이론들을 중심으로 경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익힐 수 있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
18세기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은 인간의 선택을 정확한 계산에 기반한 효용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해석해왔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이 고려해야 할 모든 대상의 가치를 계산하여 가장 가치가 큰 대상을 선택하는 완벽한 합리성을 보여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철벽의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정형화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을 어떤가. 가격이 비싸도 좋아하는 브랜드의 커피를 마시게 되는 것이나 ‘세일’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써버리는 게 보통 인간이다. 규모에 맞게 소비하자고 하지만 번번이 예산을 초과하는 것도 다반사이다.
주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합리적’ 선택과 현실과의 괴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태동한 것이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나 인간은 모든 정보를 확보할 수도 없고 확보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한계를 지니므로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제한합리성’을 이론화했다. 이어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경제학 이론에 심리학의 연구 성과와 다양한 실험방법을 접목해 경제주체의 의사 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준 합리적 경제이론’을 수립했다. 카너먼도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후 하버드, MIT 등 미국 대학들이 행동경제학을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제도권에서도 심도 있는 논의들이 이루어지면서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의 핫 트렌드가 되었다.
실제에 기반한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한다. 인간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의사 결정이 합리라는 단일한 측면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뜻에서다. 또한 비합리적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일정한 경향이 있고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하다. 특히 행동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이 풀지 못했던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리스크와 타이밍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인간의 감성과 직관이 어떤 선택과 판단을 가져오는지 밝히는 데 주목한다.
휴리스틱(Heuristic)과 편향(Bias): 인간의 판단은 합리적이지 않다.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의 사고 자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 즉 편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입증한 것이다.
인간의 정보 처리는 현실적인 제약들로 인하여 100% 완벽하거나 정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주어진 상황과 자신의 인지 능력 한도 내에서 자신에게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처럼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는 알고리즘처럼 일정한 순서대로 풀어가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완벽한 논리보다는 그 때 그 때 통용되는 일종의 주먹구구식 방법(Heuristic)을 활용하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일종의 편향(Bias)을 갖게 되는 것이다.
‘휴리스틱’의 가장 큰 특징은 이용가능성(Availability)이다. 이는 어떤 대상의 출현 빈도나 확률을 판단할 때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기억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에게 자살과 타살 중 어느 쪽이 많은지 물으면 타살이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1983년 미국에서는 자살 2만7300건, 타살 2만400건으로 자살이 더 많았다. 매스컴을 통해 자살보다 타살을 더 많이 접하기 때문에 발생한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이다. 이용가능성은 특히 이미지화가 용이한 경우에 두드러진다. 또한 기억이 그 대상의 빈도나 확률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할 경우 바이어스가 생기게 된다.
휴리스틱의 또 다른 특성은 대표성(Representative)이다. 대표성은 어떤 집합에 속하는 개별적 사건 혹은 특징이 그 집합의 특성을 그대로 대표한다고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 바이어스는 크기가 작은 표본일지라도 모집단의 성격을 대표한다고 여기는 일명 소수의 법칙이다. 작은 샘플로 실력을 평가하거나 평균으로의 회귀를 무시하는 경우다.
기준점과 조정(Anchoring & Adjustment)은 불확실한 일을 예측할 때 활용되는 것으로 조정단계에서 최종 예측치가 기준점에 얽매여 적절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기준점 효과라는 편향이 생긴다. 희망소매가격 2500원, 판매가격 2300원으로 표시할 경우 희망소매가격이 기준점이 되어 판매가를 싸게 느끼는 식이다. 기준점이 주는 영향이 강하기 때문에 기준점 효과를 제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한 기준점 효과는 일단 자신의 의사나 태도를 결정하면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정보만을 모아 활용하는 확증 바이어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휴리스틱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바이어스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철학적 전제와 전통적인 인간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행동경제학이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학문적 사건이자 과학적 변혁이라 일컬어지는 이유이다.
프로스펙트 이론: 인간의 선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휴리스틱, 바이어스라는 개념과 더불어 행동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이다.
‘사람은 변화에 반응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프로스펙트 이론의 출발점이다. 즉 사람은 상황에 따라 같은 조건에서도 전혀 상반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조건에서 금액만 차이를 두고 선택을 물을 경우, 기대효용이론에서는 같은 선택을 해야 마땅하지만 프로스펙트 이론에서는 사람들이 상황을 이득 또는 손실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위험을 회피할지 위험을 추구할지 선택한다고 본다. 당연히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프로스펙트 이론에서는 주류경제학의 효용함수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가치함수 및 확률가중함수가 사용된다. 가치함수는 준거점 의존성, 민감도 체감성, 손실회피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준거점 의존성이란 절대적 효용보다 준거점을 기준으로 한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절대량이 아니라 부의 변화가 효용 혹은 불효용을 주는 것이다. 연봉이 2000만원인 사람이 3000만원으로 늘었을 경우와 연봉이 6000만원이 사람이 4000만원으로 줄어들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민감도 체감성은 이익이나 손실의 가치가 작을 때에는 변화에 민감하지만 가치가 커짐에 따라 민감도가 감소한다는 특성이다. 손실 회피성은 같은 액수일 때 손실이 이익보다도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실험에 따르면 1000원의 손실이 주는 불만족은 1000원의 이익이 주는 만족보다 2~2.5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프로스펙트 이론에 의하면 가치는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점으로부터 손익으로 측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확률가중함수는 어떤 확률이 적을 때는 과대평가되고 확률이 중간 이상으로 커지면 과소평가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 결과 확률이 낮을 때는 이익에 대한 리스크를 추구하는 대신 손실에 있어서는 리스크 회피적으로 나타난다. 확률이 높으면 반대가 된다. 당첨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역전을 꿈꾸며 로또를 구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치 함수의 손실회피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보유효과(Endowment Effect)와 현상유지 바이어스(Status Quo Bias)를 갖게 된다. 보유효과란 어떤 것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을 때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현상유지 바이어스는 현재상태에서 변화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경향이다. 단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상품의 가격, 임금, 이윤 등에 관해 공정한지 여부를 판단할 때도 손실회피나 보유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저자는 분배와 재분배에 관한 공공정책을 입안하거나 실행함에 있어서도 “준거점 의존성과 손실회피성을 충분히 배려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프레이밍 효과: 인간의 선호도 변한다.
행동경제학에서 제시하는 강력한 또 하나의 이론은 프레이밍 효과다. 두 사람은 인간의 의사 결정이 질문이나 제시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이를 사고의 틀, 즉 프레임(Frame)으로 규정하고 프레임에 따라 인간의 판단이나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고전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이 전제하는 불변성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실질가치냐 명목가치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화폐착각’이 프레이밍 효과의 대표적인 예이다.
프레이밍 효과는 특히 정책 판단에 대한 투표나 설문조사에서 두드러진다. 같은 정책도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선호는 달라진다. 또한 현상유지 바이어스의 결과로 초기값을 어떻게 설정해 놓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찬반도 정반대가 될 수 있다.
프레이밍 효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사결정자의 자의로 일어나기도 한다. 금전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때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항목이나 시간 같은 좁은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어 그 속에서 결정을 내리려는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 같은 경우를 말한다.
결국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은 합리적인 추론만으로는 최선의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감정은 그 자체로 휴리스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행동경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흐름 가운데 하나인 신경경제학을 비롯해 인간의 감정이 좋은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그 결과 어떠한 사회현상이 발생하는지를 고찰하는 행동경제학은 완전히 새로운 학문이라기보다 기존의 경제학을 다른 시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여러 요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에 적합한 최선을 결정을 내리는 인간 선택의 복잡 다양함, 그리고 그 집합적 결과로서의 경제를 이해하기에 행동경제학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가장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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