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프로스펙트 이론

팔락 2014. 2. 13. 12:56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

경제학은 오랫동안 인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기대효용이론(expected utility theory)에 투영되었다. 기대효용이론은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기준은 기대소득이 아니라 기대효용(expected utility)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소득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에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받게 되는 소득을 곱하여 계산된다. 다시 말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한 대안으로 얻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의 크기를 의미한다.

 

기대수익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면, 지금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현금 10만 원과 기대소득이 10만 원인 복권은 동일하게 취급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한 10만 원보다는 확실한 현금 10만 원을 더욱 선호한다. 이러한 현상은 확실한 소득과 불확실한 소득에 대한 효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 기준은 기대소득이 아니라 기대효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 회피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기대효용이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불확실성하에서 우리가 수행하는 의사결정 내용은 기대효용이론에서 제시하는 바와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 이들에 의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효용(utility)이 아니라 가치(value)에 근거하여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그러한 의사결정의 행태를 준거 의존성(reference dependency), 민감도 체감성(diminishing sensitivity), 손실 회피성(loss aversion) 이 세 가지 형태로 설명하였다.

 

의사결정의 세 가지 형태

준거 의존성이란 의사결정이 효용의 절대적인 크기보다는 준거점으로부터의 변화에 근거하여 수행된다는 것이다. 만약 A라는 사람은 금융자산이 3,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줄고, B라는 사람은 금융자산이 1,000만 원에서 1,100만 원으로 늘었다면, 비록 절대적인 금액은 적을지라도 B가 느끼는 감정이 더 행복할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판단의 기준점이 각각 3,000만 원과 1,000만 원으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준거 의존성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크기보다는 판단의 기준점이다.

 

다음으로 민감도 체감성은 이익이나 손실의 기준 가치가 작을 때에는 변화에 민감하여 손익의 작은 변화가 비교적 큰 가치 변동을 가져온다. 그러나 기준 가치가 커짐에 따라 이익이나 손실의 작은 변화에 대한 가치의 민감도는 감소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가격이 5억 원에서 6억 원으로 상승한 사람이 51억 원에서 52억 원으로 상승한 사람에 비해 더욱 크게 상승했다고 생각한다. 실내 기온이 1도에서 4도로 오를 경우가 21도에서 24도로 올랐을 때보다 더욱 따뜻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손실 회피 성향은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만 원을 주웠을 때보다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더욱 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니엘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측정에서는 크기가 같은 이익과 손실 중에서 손실이 약 2~2.5배 크게 느껴진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상에서 설명한 세 가지 현상을 기반으로 한 이론을 발표하고 이를 ‘프로스펙트 이론’이라고 칭하였다. 원래 프로스펙트(prospect)란 가망 혹은 기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일견 위에서 설명한 여러 현상과는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카너먼과 트버스키 교수 역시 자신들의 이론을 ‘가치이론’으로 부르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론은 이전까지 주류 경제학의 이론인 기대효용이론을 대체하여 가치 함수(value function)와 확률의 중요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론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두 교수는 좀 더 독특한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지칭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프로스펙트 이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