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가족을 위한 새해 결심
토요일 저녁 가족 풍경. 딸은 연예인 커플의 가상 결혼에 빠져 TV 속으로 뛰어들 기세다. 엄마는 빨래를 개다가 아빠에게 말을 건네본다. 그러나 아빠는 묵묵부답. 스마트폰 화면에 정신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부부 3쌍 중 1쌍이 하루에 30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조사 결과, 대화를 방해하는 요인 1위는 늦은 귀가와 주말 근무로 나타났다. ‘시간이 없어서 대화를 못 한다’는 얘기다.
아이러니는 대화할 틈이 없던 부부가 정작 한가해지면, 대화보다 부부싸움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은퇴 이후가 그렇다.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오가는 말마다 엇박자가 나기 일쑤다. 중장년층 이혼이 신혼 이혼을 사상 처음으로 앞지른 배경이기도 하다. 2012년에 이뤄진 이혼(11만4316건) 중 20년 넘은 부부의 이혼이 총 3만234건으로, 4년 이하 부부의 이혼(2만8204건)보다 많았다.
생각해보면 대화 부재를 시간 없는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니다. 대화 시간을 따로 내야만 한다는 생각부터가 핑계일 수 있다. 대화는 언제든 짬짬이 나눌 수 있다. 밥을 먹거나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체크하면서도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많은 남성이, 말을 걸어오는 아내를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는 점이다. 특히 중장년층 남성의 경우 아내의 말을 ‘쓸데없는 소리’로 여겨 묵살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애정 표현이나 격려 같은 친밀한 대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여성에게 대화는 ‘친밀함을 다지는 수단’이다. 미국 언어학자 데버러 태넌에 따르면 남성은 정보 전달을 위한 ‘리포트 토크(Report Talk)’를 하는 반면, 여성은 친밀함을 확인하기 위한 ‘래포 토크(Rapport Talk)’를 한다.
여성들은 같은 얘기를 반복할 때조차 새로운 느낌을 얻는다. 그들이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상대에게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이다.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토요일 저녁의 TV에선 멋진 남녀가 닭살 돋는 대화를 주고받는 데 1초도 허비하지 않는다. 딸은 TV를 보며 아름다운 결혼의 꿈에 부푼다. 그러나 고개만 돌리면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엄마와 아빠의 답답한 침묵. 결혼 대신 연애만 하고 싶은 여성 한 명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새해에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 색다른 결심을 해보는 게 어떨까. 아내의 이야기에 짜증 내지 않고 맞장구를 쳐주거나 관심 있게 들어주는 것이다. 열린 대화야말로 세상의 불안으로부터 가정을 지켜내는 출발점이다. 그 어떤 거창한 결심보다 가족의 행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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