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기만과 기만의 탐지

팔락 2013. 12. 5. 09:41

화난 척하지 말라, 잃는 게 더 많다

분노는 협상가에게 요긴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상대편이 화난 것처럼 보이면 우리는 상대가 거칠고 야심만만하며 요구하는 것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만만치 않은 상대로 생각하고 요구 수준을 낮추며 일찌감치 양보한다. 이 때문에 노련한 협상가들은 협상을 하면서 일부러 화가 난 것처럼 가장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인 로트먼스쿨의 스티븐 코트 교수 연구팀이 최근 ‘실험사회심리학저널’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화를 내는 것과 화를 내는 척하는 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실험 참여자들은 화상으로 모의협상을 진행했다. 사실 협상의 상대방은 사전에 전문배우가 촬영해 둔 영상이었다. 배우가 촬영한 방식은 모두 3가지였다. 첫 번째는 중립적이면서 감정이 배제된 태도였다. 두 번째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분노의 태도로, 배우들은 이전에 화가 났던 실제 기억을 떠올리며 촬영했다. 마지막은 ‘표면상의’ 분노로, 얼굴은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중립적인 감정을 유지했다. 실험 참여자들에게 이 세 가지 영상 중 하나를 보여주고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물었다. 모든 영상에서 제안은 동일했다.

 

진심으로 화내는 상대방을 본 참여자들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상대방을 본 참여자들보다 적게 요구했다. 반대로 상대방이 거짓으로 화를 낸 영상을 본 참여자들은 중립적인 상대방을 본 참여자들보다 더 많이 요구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거짓으로 화내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이런 상대방과 협상할 때 더 많이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감정을 거짓으로 표출하는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비협조적이며 다시 거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신이 엄청나게 훌륭한 배우가 아니라면 꾸며낸 분노의 표출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최한나 기자

 

# 모든 동물들은 진화과정에서 기만의 전술 그리고 이를 파악하는 전술을 발전시켜왔다. 최초의 기만은 외부를 향한 것이었을 지 몰라도 이는 결국 자기기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에 맞서 기만을 탐지하는 기술도 발전해 왔다. 따라서 기만은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할 여지가 있지만 결국 그 대가를 치른다.

 

가장 효과적인 거짓은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는 거짓이다. 상대방이 전혀 파악하지 못하므로. 또한 이러한 기제는 인간의 무의식적 심리에서 자기정당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기제는 자신의 자아심리를 방어하는 효과가 있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  '정직이 정책보다 낫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에 대해서는 실제로 의문의 여지가 있다.

--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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