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하이에크의 법치주의

팔락 2012. 3. 19. 12:20

자유주의의 정치적 이상은 '법의 지배' 원칙이다. 법의 집행과 관련하여 국가는 언제나 강제와 결부되어 있다. 강제는 무서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법'이라는 이름하에 무조건 이를 집행하도록 정부에게 강제권을 허용할 수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공권력을 이용하여 집행해도 좋은 법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법의 지배 원칙 또는 '법치주의'이다. 하이에크는 법이 '법다운 법'이 되기 위한 조건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중요한 조건을 요약하면 다음 두 가지이다.

 

1.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행동규칙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적이다. 개인들의 특정한 사정이나 특수한 장소 및 시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2. 그것은 목적이나 동기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 그래서 탈목적적인 행동규칙이다. 의런 의미에서 추상적이다. 이런 행동규칙들은 대부분 특정의 행동을 금지(예;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법이 이런 조건을 갖게 하는 원칙, 정부로 하여금 이런 조건을 갖춘 법에 따라 통치하도록 하는 원칙, 이것이 법의 지배 원칙이다. 이것은 사실상 '좋은 법'이 무엇인가를 판정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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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한 정치철학자 오크쇼트는 법을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를 '목적이 지배하는 사회(telocratic society)'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는 개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식의 효과적인 이용을 방해하는 사회이자, 개인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지식에 따라 행동하기 어려운 사회이다. 목적이 지배하는 사회는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도 아니다.

 

법의 일반성 추상성의 조건은 흄, 칸트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법의 지배 사상은 원래 정의의 규칙에 관한 윤리학적 관점을 법률에 적용한 것이다. 칸트의 '지상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정의의 규칙의 특성을 말해준다. 일반적, 추상적 성격의 도덕규칙이 그것이다.

 

# 현대에서 일반적으로 법을 자연법과 실정법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하이에크는 이런 이분법에 반대하고 제3의 개념인 고대 그리스의 노모스 개념을 부활시킨다. 이 노모스 개념은 아담 스미스, 퍼거슨, 데이비드 흄으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이 발견한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세 가지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다. '피사이(physei)'는 자연을 '테사이(thesei)'는 인간의 의도적인 결정을 그리고 '노모스(nomos)'는 인습이나 관행을 의미하는 컨벤션(convention)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이에크는 이 노모스를 인간행동의 결과로 생겨났으나, 어떤 뛰어난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규칙을 뜻한다고 말한다. 즉, 노모스적인 법을, 상행위나 거래를 위해 평범한  인간들이 행동한 결과로 저절로 발생하여 문화적으로 진화한 법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하고, 이 노모스에게만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다운 법', '자유의 법'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이 노모스를 정리한 것이 그리스의 솔론의 법, 이를 모방한 로마의 12표법 등이다.

 

2세기 무렵부터 국가사회주의가 진전되면서, 법은 발견된다는 로마법적 사고가 중지되고 법은 제정되어야 한다는 제정법 사상이 형성되었는데 그 최고절정이 유스티니아우스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