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는 인간이성은 '구조적인 무지'를 특성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개개인들은 현장지식과 자신의 선호 그리고 자신의 독특한 기질을 기초로 하여 행동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한다. 그들이 가진 현장지식은 자신에게 고유한 상황, 시시각각으로 변동하는 상황에 관한 지식 그리고 그들이 타인들과 갖는 고유한 관계들에 관한 지식이다.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 사람들에 관한 지식과 그 지역 사람들끼리의 상호의존성과 네트워크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지식이 현장지식, 지역적 지식이다. 그 지역 사람들의 가치나 전통에 관한 지식도 이에 속한다.
현장지식 또는 지역적 지식은 과학지식과는 달리 시간과 장소에 고유하고, 지역 사람들 또는 개별 인간에 관한 고유한 지식이다. 그런 지식은 지역이나 인간 그리고 시점과 비교적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펀적 지식이 아니라 특수한 지식이라는 뜻이다.
과학지식은 교과서나 도서관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모여 있다. 그러나 현장지식, 지역적 지식은 각각의 직업 현장이나 지역에 분산되어 존재한다. 하이에크는 이를 '지식의 분산'이라고 말한다. 인적으로나 장소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지식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 이것이 '분업'의 원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현장지식 또는 지역적 지식의 성격이다. 이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통계적으로 수집 가능한 지식이다. 가족의 수와 같은 지식이 그 예이다. 두 번째는 통계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이다. 떡을 좋하한다든지, 쌀밥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열성적인 인간, 성실한 인간 같은 인간의 성격에 관한 지식도 이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암묵적 지식'이 있다. 이는 통계적으로는 고사하고 말로조차도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이다. 알고는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 선호, 기술적 재능이나 능력 등에 대부분 농축되어 있다. 어감, 정의감, 법감정 또는 공동체감, 도덕감 등도 암묵적 지식에 속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암묵적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초의식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의식조차 할 수 없는 지식, 즉 알고는 있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다.
인간이성의 구조적 무지는 이렇다. 첫째, 어느 누구도 자신에 관해서조차 전부를 알 수 없다. 둘째, 누구나 타인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암묵적 지식의 존재 때문이다.
인간이성의 구조적 무지와 정부의 계획 및 규제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부의 전문가 또는 관료들이 성공적으로 질서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지역적 지식 또는 현장지식을 전부 수집하여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암묵적 지식의 존재로 인한 원천적이고 절대적인 불가능성이다. 개인들 스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관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은 개개인들이 제각기 사용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것이 지식의 사용과 관련된 행동의 자유다. 이런 지식이야말로 개인들이 현장에서 생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지식이다.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개인들에게 암묵적이고 초의식적인 지식의 자유로운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서는 개개인들이 제각기 가진 암묵적 지식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을 분만 아니라, 동시에 개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든다. 타인들도 이용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가격구조와 행동규칙이다, 이 두 가지가 개인들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현장-지역적 지식을 타인들에게 전달한다.
가격구조와 도덕규칙, 관행이나 관습 등과 같은 사회규범들은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식들을 반영한다. 또한 이런 행동규칙들은 인간이 가진 이성의 구조적 무지 속에서 갈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이것이 시장의 자생적 질서의 묘미이며 시장을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사회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배정의에 대한 하이에크의 입장2. (0) | 2012.03.16 |
---|---|
분배정의에 대한 하이에크의 입장1. (0) | 2012.03.16 |
자생적 질서와 지식의 한계1. (0) | 2012.03.15 |
하이에크의 자유사회에 대한 이론 (0) | 2012.03.15 |
뜨는 직업, 저무는 직업 (0) | 2012.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