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가 자유사회를 기술하고 그 원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정력을 기울여 개발한 것이 '자생적 질서'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인류에게 유익한 사회제도의 대부분은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개별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생겨난 결과물이다.
간단히 말해서, 자생적 질서는 인간행동에서 생겨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생적 질서에 속하는 대표적인 것이 언어다. 언어는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상관습(商慣習)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기로 작정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간에 상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생겨난 것이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된다는 계명, 타인의 재산을 탐하거나 훔쳐서는 안되다는 계명, 이런 것도 누가 계획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행동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자생적 질서에 속하는 것은 이 밖에도 예의범절과 같은 도덕규범, 관습법, 그리고 화폐 등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시장(市場)이다. 이것 역시 누가 계힉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생성된 부산물이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자생적 질서의 발견을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그리고 애덤 퍼거슨 등이 확립한 스코들랜드 계몽주의의 공로로 돌리면서 그들의 발견을 확대, 심화시켰다.
그런데 자생적 질서와는 전혀 상이한 사상이 있다.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계획 사상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류에게 유익한 모든 제도는 엘리트들이 계획하여 만든 것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이에 따르면, 질서를 위해서는 항상 계획이 필요하다. 완장을 차고 질서를 바로잡는 사람이 없으면 질서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 홉스, 루소, 벤담, 케인스, 롤스로 이어지는 전통으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기초이기도 했던 프랑스 계몽주의는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사회주의를 출산하는 데에서 최고 절정을 이룬다.
하이에크는 프랑스 계몽주의와는 달리,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창조자로서의 주권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렸다. 더불어 이런 생각은 인간이성에 대한 무제한적인 신뢰를 전제하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라고 비판했다. 인간은 그 어떤 엘리트라고 해도 질서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현대사상의 핵심적 오류를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전통에 따른 이성의 자만에서 찾고 있다. 이는 모든 질서가 인간의 계획에 따른 산물이고 인간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사상이며, 좋은 질서가 되려면 반드시 인간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질서를 계획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인간이성에 대해 이토록 신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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