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섹스와 유토피아

팔락 2011. 4. 21. 12:49

문화는 변해도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고고학이 입증한 보아스의 이 핵심 개념이 옳다면, 문화적 변화는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도 참일 것이다. 공상적 이상주의자들은 이 사실 앞에서 항상 괴로워했다. 모든 유토피아에서 변함없이 발견되는 개념은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 속으로 개인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동체주의를 믿지 않는 광신도 집단을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공동체 문화를 경험하면 인간의 행동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은 몇 세기마다 한 번씩 특별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앙리드 상 시몽과 샤를 푸리에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로부터 존 험프리 노이스와 바그완 슈리 라즈니시 같은 실천적 모험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주의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개인의 자율성을 억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에세네파, 카타르파, 롤라드파, 후스파, 퀘이커교, 셰이커교, 히피를 비롯해 기억하기에는 너무 작은 무수한 종파들이 그런 희망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 모든 시도는 똑같은 결과로 끝났다. 공동체주의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공동체들이 남긴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은 공동체의 붕괴 원인이 공동체를 둘러싼 사회의 핍박이 아니라 개인주의로 인한 내적 갈등이었다는 점이다.

 

보통 그 갈등은 섹스 때문에 시작된다. 성적 파트너에 대한 선택적이고 독점적인 욕망을 폐지하고 모두에게 자유로운 사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다. 심지어는 공동체 문화 속에서 성장한 신세대들도 질투는 여전하다. 사실 질투하는 성향은 공동체의 어린이들에게서 더욱 심해진다. 어떤 종파들은 섹스를 폐지하여 살아남는다. 에세네파와 셰이커교는 금욕주의를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그 결과는 멸종이다.

 

어떤 종파들은 성적 관습을 완전히 재창조한다. 존 노이스가 19세기에 뉴욕주 북부에 세운 오나이다 공동체는 나이 많은 남자들이 젊은 여자들과 사랑을 하고 나이 많은 여자들이 젊은 남자들과 사랑을 하되 사정을 금지했던 이른바 `복합 결혼`을 시행했다. 라즈니시는 그의 뿌나 암자에서 최초로 자유 연애를 멋지게 성공시켰던것 같다. `과장이 아니라 우리는 아마 로마시대의 바커스 축제 이후로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 fucking의 축제를 만끽했다`고 한 참가자는 자랑했다. 그러나 뿌나 암자는 곧 분열되었고 그 뒤를 이어 오레곤의 목장도 분열되었는데, 누가 누구와 잘 것인가를 놓고 발생한 질투와 반목이 큰 몫을 차지했다. 실험은 그렇게 끝났고 실험 뒤에는 93대의 롤스로이스, 살인 미수, 지방 선거를 조작하기 위한 대규모 식중독 사건, 이민 사기 사건이 남겨졌다.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문화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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