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공감각

팔락 2015. 4. 21. 17:33

공감각은 흔히 시각과 청각처럼 보통 관계없는 두 가지 감각 양상이 저절로 합쳐지는 현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감각을 느끼는 사람들은 두 가지 별개의 감각을 단 하나의 단위로 경험하며, 제2의 감각 입력을 의지로 억압할 수 없다. 

 

다음은 알파벳에 관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묘사다.

 

영어 알파벳의 기다란 a는 --- 풍화된 나무의 색조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프랑스어의 a는 광택이 있는 흑단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검은색의 무리에는 딱딱한 g(유황 처리된 고무)와 r(찢기고 그을음 묻은 넝마)이 포함된다. 오트밀의 n과 흐늘흐늘한 국수의 l, 뒷면이 상아색인 손거울의 o는 흰색 무리에 속한다 --- . 파란색 무리로 넘어가 보면, 철의 느낌이 잇는 x가 있고, 천둥의 z, 월귤나무의 k가 있다. 소리와 모양 사이에는 미묘한 상호작용이 있기에, 내게는 q는 k보다 더 짙은 갈색이며, 하늘빛과 자개빛이 오묘하게 섞여들어간 s보다 c가 더 흐린 파란색이라고 본다. 

 

신경학자 라마찬드란은 공감각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설득력 있는 추측을 내놓는다. 

'아마도 돌연변이로 인해, 보통은 분리되어 있는 뇌 영역들 사이에 연결이 생길 것이다. 아니면 보통 드문드문하게만 이어져 있는, 영역들 사이에 원래 존재하던 연결을 쳐내는 능력에 돌연변이의 결과로 결함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라마찬드란은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배선이 교차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영역들 사이의 신경화학적 불균형으로도 같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이웃하는 뇌 영역들은 흔히 서로의 활동을 억제하고, 이것이 상호 대화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억제가 감소되어, 예컨데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 차단되거나 억제물질을 생산하지 못함으로써 화학적 불균형이 일어나면, 또한 한 영역에서의 활동이 이웃 영역에서도 활동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한 교차 활성화는 원리적으로 넓게 분리된 영역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덜 흔한 형태의 공감각 일부를 설명해줄 것이다.'

 

공감각은 흔히 가계를 타고 흐르므로, 대부분의 신경학자들이 유전적 요소를 인정한다. 그러나 한 가족의 일원이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색깔들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같은 유형의 공감각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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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은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더 저급한 뇌 모듈들이 우리의 평범한 지각뿐만 아니라 우리가 글자나 숫자와 같은 추상적 기호들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 뇌 생각의 한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