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정의를 내려보고 싶은데, 정신적인 것들이 대개 그렇듯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우선 모든 스트레스가 똑같지가 않다. 특정 유형의 스트레스는 학습 효과를 떨어뜨리지만, 어떤 유형의 스트레스는 학습을 촉진한다.
둘째, 사람이 자기가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스카이다이빙을 오락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는 한편, 악몽같은 경험으로 여길 사람도 있는 법이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이란 본래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를 주는 일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스트레스의 주관적 본질이 두드러진다.
우리의 몸 역시 스트레스를 정의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심리적 반응 중에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를 느끼는지 아닌지를 과학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유는?
우리는 천적을 만났을 때 공포에 떨며 움츠러드는 것과 똑같은 신체적 메커니즘을 성관계를 할 때도 이용한다. 심지어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할 때에도 똑같은 신체적 반응을 보인다. 우리 몸에게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호랑이나 오르가즘이나 칠면조 고기나 죄다 비슷하게 보이는 셈이다. 생리적으로 흥분한 상태는 스트레스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기쁨을 느낄 때에도 나타난다.
몇 년 전에 뛰어난 과학자 김진석과 데이비드 다이아몬드David Diamond는 스트레스의 기초를 두루 포함하는 '3요소'를 정의했다. 그들의 견해에서, 그 세 가지가 동시에 발생하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의 1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 반응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외부 요인에 의해 측정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18개월이던 내 아들이 저녁식사에서 당근을 처음 봤을 때 분명하게 보았다. 아이는 불같이 화를 냈다.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기저귀에 오줌을 샀다. 아이가 생리적으로 흥분한 상태라는 것은 식탁 주변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정의 2 스트레스 요인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사실은 간단한 질문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 경험의 강도를 낮추거나 피할 재간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앞에서 말한 18개월 된 내 아들은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아이는 몇 초 안에 당근을 집어서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능숙하게 의자에서 내려가더니 당근을 밟아서 뭉개려고 했다. '피해야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이만한 대답도 없지 않겠는가.
정의 3 스트레서 요인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지배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스트레스는 더 심하게 느껴진다. 이런 통제요인, 그리고 그의 단짝 쌍둥이인 '예측 가능성'이 학습된 무기력의 밑바탕을 이룬다. 우리 아이는 아빠가 아이에게 당근을 먹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최대한 강하게 반응했다. 논점은 '통제'였다. 내가 당근을 집어서 씻은 다음 '냠냠' 하고 소리를 냈지만, 아이는 당근을 먹지 않았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아이는 당근을 전혀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아빠가 당근을 전부 먹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통제할 수 없는 당근은 통제할 수 없는 행동과 같은 것이었다.
통제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심한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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