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여, 미래는 인문학에 있다
[내 생각은]청춘이여, 미래는 인문학에 있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는 동아일보 칼럼(2월 28일자 26면)에서 인문학을 용잡이 학원에 비유하며 인문계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의 인문 교양 교육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이는 전형적인 경제학 지상주의이다. 또 김 교수는 ‘인문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인문학을 찾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러한 몰이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첫째, 김 교수는 기업들의 이공계, 상경계 출신 선호를 설명하면서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가 인문학 덕분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경영하던 시절, 기술적인 부분을 다룬 사람은 워즈니악이었지 잡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워즈니악이 기술적으로 더 뛰어났음에도 잡스가 애플을 떠나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가?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컴퓨터를 공부한다고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잡스와 저커버그가 ‘천재’라고 가정하더라도 천재들과의 경쟁에서 취할 전략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통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여야 한다. 이는 인문학 없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전자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한 점은 오히려 기업이 현실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김 교수는 ‘인문학은 사치재’라고 규정하며 그 수요자를 소득이 높은 중장년층으로 본다. 이것은 하나의 결과를 통해 원인을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에서는 사치재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왜 그들이 인문학을 찾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소득수준이 높은 중장년층들이 인문학을 찾는 이유는, 그것이 사치재이기 때문이다”라는 무의미한 결론을 내버린 꼴이다.
인문학을 찾는 이유는 사치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그 풍요가 인생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인문학을 통해 채우려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음에도 구성원들의 행복까지는 감싸 안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사치재가 아니고 ‘생활필수품’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몰이해가 대학을 ‘기업 인재 양성 기관’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큰 문제다. 대학이 있는 이유는 국가가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졸업자는 기업의 일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이끄는 사람이다. 즉 대학은 상황에 적응할 사람을 위한 학원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 제시는 대학의 일이다.
덧붙이자면 경제학은 희랍어 ‘오이코노미아(οικονομια)’를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번역한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개개인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감’을 의미한다. 인문학은 이 지점에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이다. 따라서 방황하는 청년과 중장년층이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적이다.
김희원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