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규제 기요틴은 반헌법적 국가폭력이다
[안광무 칼럼]
의료규제 기요틴은 반헌법적 국가폭력이다
헌법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혹은 공공복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헌법 제 37조 2항) 학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헌법 제22조 1항). 또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헌법 제31조 4항). 즉 학문의 영역은 어떤 권위에 의해서도 함부로 침해받거나 간섭받지 않는다.
한편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국민건강권. 헌법 제 36조 3항). 이를 위해 의료법이 제정된 것이다. 의료법 제 2조에서는 의료인과 각 의료인의 업무영역을 상징적으로 규정했고, 동법 제 27조(무면허 의료행위 금지)에서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일지라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는 금지시키고 있다.
모두 “국민건강보호”라는 합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한 정당한 규제들이다.
경제인이나 경제 관료들은 곧잘 자격증주의(특히 의사면허제도)를 비판한다. 특정 직업군에서 업무적 독점과 배타성을 갖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자격증주의는 이런 불공정, 단점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특히 그 직업군의 업무가 위험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받을수록 이런 자격증주의는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선택의 시간과 노력이라는 거래비용을 대폭 줄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격증주의(면허제도)는 공공복리에도 부합한다. 아직까지 다른 효율적인 대안은 없다.
최근 정부는 의료규제 기요틴을 앞세워 한의사들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한의사들에게 현대의료기기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그 명분조차 빈약하다.
우선 현대의학은 과학에 근거한 학문이며 한의학은 동양철학인 음행오행설에 기반했다. 학문적 원리부터 천양지차다. 환자접근 방법도 다르다. 환자불편을 말하지만 타국의 의료체계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각과 전문의에 대한 경제적,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난 국가는 없다.
침소봉대다. 진정 환자의 편리를 위한다면 처음부터 올바른 전문의를 찾아가도록 정부가 지속적으로 계도하면 해결된다. 보완대체의학인 한방치료는 그 다음 환자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문제다.
다음으로 한방의 현대화, 과학화를 주장하지만 이를 위해 정부는 수년 동안 막대한 국가예산을 집행했고 일부 대학병원과 한방병원은 의한방협진체제를 운영해 왔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뚜렷한 성과는 없다. 따라서 한의사협회의 주장은 무리한 영역확대를 위한 핑계일 따름이다.
전문지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식습득과 숙련과정만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지식(암묵적 지식)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한의학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영상의학 교육은 그 지식의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주마간산 격으로 어떤 학문인가를 배우기 위함이다.
이는 의사들이 치과학을, 약사와 간호사들이 의학을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료인으로서 최소한 알아야 하는 기초의학지식에 불과하다. 배웠으니 자격이 있다는 한의사협회의 주장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으며 만용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영역별 의사면허제도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규제다. 정부가 의사면허제도를 불필요한 규제로 오인해 무분별하게 의료영역을 파괴한다면 사회질서가 심각하게 붕괴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추가될 것이다.
시간, 노력, 비용, 자원 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소중한 건강과 생명까지 잃게 된다. 즉 경제적, 기술적 효율성조차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저질의료를 장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규제 기요틴은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완화도 아닐뿐더러 규제완화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과학의 산물인 현대의료기기는 전문가의 손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지만 비전문가의 손에서는 생명을 해치는 흉기가 되기 쉽다.
현재 병원에서 촬영되는 모든 영상이미지는 해당 전문의가 있을지라도 영상의학전문의의 판독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영상판독은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고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규제기요틴은 그 순수성부터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특정 기업(의료기기업체)의 이익만을 위한 규제완화로 비춰진다.
이는 국가권력이 국민건강은 도외시한 채 경제논리에 따라 학문의 자율성, 전문성, 독립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면허제도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초법적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충청북도의사회 안광무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