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정명(正名)론
정명사상
事物의 이름을 (名) 바로 한다. 는 뜻, 인간세상의 과학 정치 윤리적 名實 개념이다. 사물의 실상에 대응하는 사실적인 이름으로 본다. 이 경우 정명은 사물의 실제와 그 명을 일치시킨다는 뜻으로 동이(同異), 시비(是非), 진위(眞僞)를 분별한다는 논리학의 사실 판단의 정확한 자료에 해당한다.
인간의 내면적 덕에 대응하는 명분의 의미로 정명론은 인간의 덕과 그 명분을 일치시킨다는 뜻으로 명분(名分), 귀천(貴賤), 선악(善惡)을 구별한다는 윤리학의 도덕가치 판단의 자료에 해당한다.
공자는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가장먼저 하겠느냐 묻자, "반드시 명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고, 또한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도 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명의 중요함을 피력하였다.
정치에 대해서 물었을 때,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하여 명분과 그에 대응하는 덕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인간이 우주와 합덕합일의 덕을 실현함으로써 예의 올바른 질서가 이루어지는 정명의 사회가 된다. 만일 모든 사물이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정명이 이루어 지지 않는 사악한 사회라는 것은 악이 활개 치는 고통의 사회가 될 것이었다.
맹자는 '임금이 임금답지 못할 때' 혁명을 통해 임금도 내쫓을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사물의 본질인 명사가 사물과 부합함으로써 다수의 군중인 국민이 소통하고 편리해져서 살기 좋게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정명 사상은 혼란한 시대에 조명 받는 사상이다. 사실의 실제가 명실상부하게 되어 야 이에 파생된 관념에 의존하는 실상과 학문이 제대로 판단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척도로 쓰이게 되었다.
혼란과 무질서란 우주(하늘님) 질서가 깨어진 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오늘날 제악이 판치는 것은 탐관오리가 법령을 (法=아전인수) 사악하게 악용하여 원성이 높은 것도 자세히 관찰 하면 모든 판단의 근거인 사물과 실상을 곡해 하고 괴변으로 (적화)혁명의 수단으로 하고자 하는 데서 생긴 혼란들이다.
공자의 정명(正名)론
<자로가 공자에게 묻는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맞아들여 정치를 한다면 장차 무엇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답한다. 명을 바로 세울 것이다.(正名) 자로가 공자에게 핀잔을 준다. 겨우 그것인가? 공자가 발끈한다. 너 경박하구나. 군자는 잘 모르면 그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명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言)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禮)나 악(樂)도 일어나지 않으며, 예와 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형벌이 통하지 않으며, 모든 형벌이 통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명을 바로 세울진대 반드시 말이 서고, 말이 설진대 반드시 시행되는 것이니, 군자는 말을 세움에 있어서 조금도 구차함이 없어야 한다.>
이름을 바로 세운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한다. 공자에 의하면 이것이 정치하는데 있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의 이런 대답에 대해서 나도 자로처럼 겨우 그것인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매우 사소한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번역판은 <정명>을 이름을 바로 세운다고 번역하는 대신에 <명분을 세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런 경우, 이름을 세우는 것보다 덜 사소해 보인다. 왜냐하면 명분을 세운다는 것은 어떤 이념, 이상에 관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정명론>과 관련해서 늘 언급되는 공자의 언명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공자에 의하면 <정치는 바로 잡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바로 잡는가? 임금과 신하로 상징되는 사회적 관계나 질서, 혹은 아비와 아들로 상징되는 가족 관계나 질서이다. 공자는 바로 여기에서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임금다움, 신하다움, 아비다음, 아들다움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어떤 기능이나 역할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며, 그것은 동시에 그러한 기능이나 역할의 이상적 상태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자로의 반문과 다르게 이름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공자가 정치와 관련해서 이름을 바르게 세울 것을 주장하기에 그 이름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인륜적 개념들이다. 이 개념들은 주로 가치의 개념이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게 이름을 세우는 것인지 늘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자에게 이러한 불안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미 임금다움의 올바른 기능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며, 아비다음의 올바른 역할도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공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은 말, 혹은 의사소통이 올바르게 될 것이며, 일이 잘 이루어질 것이다.
풍우란은 공자의 정명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덧붙인다.
<이름마다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그 집합의 사물들의 본질이며, 이 집합의 사물에 이 이름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물들은 이 이상적 본질과 일치되어야 한다. 통치자의 본질은 통치자가 이상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것, 즉 왕도(王道)의 실현이다.>
풍우란은 마치 공자의 주장이 언어 이름 모두에 해당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주장은 언어철학 일반 주제로 확장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개는 개다워야 하는가? 아니다. 개답지 못한 개도 개다. 물은 물다워야 하는가? 아니다. 그냥 물이다. 적어도 자연종 명사의 경우 정명에 대한 공자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반면에 적어도 인공 종 명사의 경우에는 우리가 그것의 기능과 역할을 전제하는 이상 공자의 주장이 성립될 수 있다. 나아가 임금의 경우에도 그 개념은 우리는 평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서술적 의미로도 사용한다. 따라서 임금답지 못한 임금도 서술적 의미에서 임금이며, 아비답지 못한 아비도 서술적 의미에서 아비이다. 아마도 공자는 이런 경우 이름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은 경우라고 답변할 수 있다.
풍우란의 해석에 의하면 공자는 일종의 본질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공자가 이런 철학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공자가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자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런 주장이 필요하다면, 과연 본질주의는 정당한 철학적 주장인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본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유사성만 존재한다면, 공자의 정명론은 어떻게 되는가?
-- [출처] 공자의 정명(正名)론/작성자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