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

팔락 2012. 3. 13. 17:04

잘생긴 독일산 셰퍼드가 철제 우리의 한쪽 구석에 낑낑거리며 누워 있다. 그 개는 강한 전기충격을 받느라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는다. 이상하게도 그 개는 쉽게 도망칠 수도 있다. 우리의 반대쪽 구석에는 전기충격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얕은 장벽이 양쪽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충격이 가해지면 개는 안전한 곳으로 뛰어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그 개는 전기가 흐르는 쪽 구석에 누워서 충격이 올 때마다 낑낑거린다.

 

대체 이 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 속에 들어가기 며칠 전에 이 개는 전선이 들어 있는 목줄에 매여서 밤낮으로 전기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전기충격에 대해 반응을 했다.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었다. 오줌을 싸기도 했다. 목줄을 잡아당겨서 전기충격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가고 며칠이 지나면서 그 개는 결국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이 개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 즉 '이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기충격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도망칠 곳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이다. 그래서 전기가 통하던 목줄을 벗기고 도망가는 길이 있는 우리에 들어간 뒤에도 이 개는 도망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 내용이 1960대 후반 전설적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 했던 유명한 실험이다. 셀리그먼은 불가피성과 그에 따른 인지능력의 와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묘사하기 위해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 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많은 동물들이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비슷하게 행동하는데, 인간도 마찬가지다. 집단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이런 증상들을 경험했다. 몇몇 수용소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가멜 Gamel'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가멜은 독일어 '가멜른 Gameln'에서 온 말로 '썩는'이란 뜻이다. 이 실험은 심하고 만성적이며 통제불가능한 스트레스가 인지능력을 와해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 모든 개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8 마리 중 5 마리가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세 마리중 한 마리는 아무리 충격을 가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더욱이 10 마리 중 한 마리는 실험을 하기 전부터 이미 무기력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