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와 인간의 눈 형성
초파리와 인간의 신체부속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사람에게는 더듬이나 날개가 없다. 사람은 고정된 위치에서 밖을 내다보는 8백개의 낱눈들로 구성된 겹눈 대신 움직일 수 있는 한 쌍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해부구조의 차이가 이처럼 크기에 사람의 기관 및 부속 형성 이해에 파리가 도움을 줄 일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당연하다. 학자들도 가령 눈 같은 경우 진화 과정에서 각 동물의 해부 구조와 시각 특징에 맞게 마흔 번 가까이 매번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초파리 눈 형성에 관련된 유전자들을 연구한다는 게 별반 주목할 만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초파리의 아이리스(eyeless, 눈 없음,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파리는 눈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유전자를 발견한 발터 게링 실험실 연구자들은 사람에게도 대응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의 유전자는 아니리디아(Aniridia, 무홍채)라 불린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사람의 홍채(색소가 있는 부분)는 크기가 줄거나 심한 경우 사라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리디아 유전자는 쥐의 눈 형성을 방해하거나 막아버린다고 알려져 있는 스몰아이(Small eye, 작은 눈) 유전자와 같았다.
사람의 카메라 식 눈과 파리의 겹눈은 구조가 전연 다름은 물론이고 상이한 필요에 맞게 적응한 산물이다. 전혀 다른 형태의 눈들을 형성하는 데 왜 똑같은 유전자가 관련된 것일까?
연구자들이 추가로 수행한 두 실험 덕분에 문제는 한층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리스 유전자가 파리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 발현되로록 조작하자, 날개, 다리, 기타 부위들에서 눈 조직이 유도되었다. 이 결과와 아이리스 유전자 돌연변이의 모습을 함께 고려할 때, 아이리스 유전자는 눈 발생을 통제하는 '마스터' 유전자인 것이 분명했다. 이 유전자가 없으면 눈 형성이 실패하고, 이 유전자가 활동하는 곳에서는 눈 구조 조직이 자라난다.
두번째 실험은 쥐의 스몰아이 유전자를 파리 몸의 이상한 부분들에 집어넣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본 것이다. 쥐의 유전자도 파리 유전자로 한 실험과 마찬가지였다. 파리 몸 조직들이 영향을 받아 눈 구조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형성된 조직이 쥐의 눈 구조가 아니라 파리의 눈 구조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유전자들은 형태가 비슷하고 유사한 효과를 일으키지만, 결국에 생겨나는 형태는 유전자를 제공한 종이 아니라 실험 대상 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쥐 유전자가 파리의 눈 발생 프로그램을 유도한 것이다.
아이리스, 아니디니아, 스몰아이 유전자를 한데 묶어 팍스-6(Pax-6)라고 부른다. 중요한 사실은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항상 눈 발생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팍스-6는 와충류 같은 단순한 구조부터 훨씬 복잡한 척추동물까지, 모든 동물의 모든 종류의 눈 형성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