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시대정신이란 어떤 시대의 사회 일반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고 특징짓는 정신을 말하며, 그 시대의 일반적 지성인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을 내포한다. 그리고 당연히 시대정신은 변한다. 그 변화는 일반적으로 진보를 향하지만 그것은 매끄러운 비탈길이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울퉁불퉁한 길이다. 때로는 퇴보하기도 하고 진보하기도 한다.
후대의 우리가 현재적인 관점에서 과거 시대정신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다음 글은 시대를 앞서 갔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1858년 스티븐 더글러스와 벌인 논쟁에서 한 말로서, 인종에 대한 그의 견해는 우리 시대에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도 백인종과 흑인종의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도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한 적도 없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흑인에게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주자고 한 적도, 공무원 임용 자격을 주자고 한 적도, 백인과의 혼인을 허용하자고 한 적도 없었으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나는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는 신체적 차이가 있으며 그 때문에 두 인종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사는 것은 영구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평등하게 살 수 없지만 함께 지내야 하므로 분명 우열 관계가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백인종이 우월한 지위에 놓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중 일부는 변화하는 도덕적 시대정신이라는 전진하는 물결에서 뒤처지고 일부는 약간 앞서 나간다. 이전 세기에 선봉에 섰던 사람들도 다음 세기에는 그 시대의 뒤처진 사람들보다 더 뒤처진다. 그 진보의 길은 구불거리는 톱니와 같지만 더 긴 시간대를 두고 보면, 진보적인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며 그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타고난 뇌의 구조와 발달 과정의 환경의 영향 속에서 각자 다르게 표현되며, 성인의 경우 마음의 틀이 고착되어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지도자와 철학이 필요 없다’는 격언은 아마도 이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마음이 바뀌는 방법은 두 가지 중의 하나이다. 숭고의 감정을 느낄만한 거대한 충격에 의해 순간적으로 마음이 바뀌거나 아니면, 조금씩 눈에 뛰지 않는 변화가 축적되어 바뀌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는 자신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과,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꾸준한 자기발전이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시대정신을 안고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시대의 바람직한 시대정신과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을 판정하는 재판관이 될 수는 없다. 단지 그 방향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시키고 평등과 정의를 지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원칙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세세한 규칙들은 경험과 역사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상호비판을 통한 공론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결정이 후대에 가서 잘못된 결정이라고 판정될 지라도.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인류는 이런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이 방향으로 전진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진보를 일으킨 원동력에는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인물들의 공헌도 있지만, 이런 선각자들의 의견에 공감하여 행동한 많은 현명한 대중의 역할이 더욱 컸다는 점이다. 후배가 선배를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고, 선배는 후배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한 번 반성해 본다면 진보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나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