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순진함과 성장

팔락 2011. 11. 17. 11:30

남을 잘 믿는 순진함이 어린이에게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특징이지만, 어른에게는 반대로 심각한 우둔함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성장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는 건강한 비판정신의 성장도 포함되어 있다.

 

속임수에 활짝 열려 있는 성향은 아이에게 흔히 발견되는 특질이다. 어른에게도 이 특질이 간혹 남는 이유는 지나간 아동기의 안온한 편안함에 대한 갈망과 그림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 및 공상과학 작가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다. "모든 의사(擬似) 과학의 껍데기 안에는 덮을 담요, 빠는 엄지 손가락, 붙들 치맛자락이 있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은 이롭다. 순진한 아이의 머릿속은 부모와 조상의 지혜가 엄청난 속도로 채워진다. 그러나 제때 졸업하지 못하면 우리의 애벌레 천성은 점성가, 대중매체, 복음 전도자, 협잡꾼의 표적이 된다.

 

인간 어린이의 뛰어난 애벌레 정신은 정보와 생각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지,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비판적 사고가 생기는 것은 아동기의 특징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것이다. 어린이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압지는 기약없는 모판으로 나중에 비판 정신이 겨자식물처럼 힘겹게 자랄 토양이다. 어린이의 자동적인 순진함은 어른의 과학적이고 건설적인 회의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떄 어린이가 '잘 속고 잘 믿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잘 믿는 사람은 예전에 들은 것과 모순돼도 최근에 들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는다. 아동기적 특성은 단순한 순진함이 아니라 잘 속는 면과 한 번 믿은 것에 대한 완강한 고집이 결합한 복합체다. 즉 초기의 극단적 순진함과 후기의 고집스러운 부동성(不動性)의 조합이다. 정말 위험한 조합이다. 옛날 예수회 단원들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처음 7년만 아이를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인간으로 만들어 주리라." 하지만 예수회의 말은 틀렸다. 인간의 성장에서 발현되는 성격과 특성, 기질, 능력은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서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