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에 대한 강렬한 욕구 2.
통제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는 상당히 강력할 뿐 아니라 통제력이 있다는 느낌은 매우 뿌듯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상대가 무능력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무작위로 행해지는 내기에서조차 더 많은 돈을 건다. 약한 상대를 만났을지라도 무작위로 받게 되는 자신의 카드를 통제할 방법은 없지만, 그럴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복권 숫자를 자신이 정할 때 더욱 당첨될 확률이 높다고 믿으며, 주사위 게임에서도 자신이 직접 주사위를 던질 때 이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이미 던져진 알 수 없는 주사위 숫자보다는 아직 던지지 않은 주사위 숫자에 더 많은 돈을 걸며, 어떤 숫자를 당첨 숫자로 할 것인지를 자신이 정할 때 더 많은 돈을 거는 경향이 있다.
만약 통제 불가능한 사건에 대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위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행동들은 모두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마음 속 깊이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 현상을 좌우할 수 있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통제력에 대한 착각의 가장 이상한 점은 이런 환상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착각이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이득이 진정한 통제력이 주는 이득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자신의 통제력에 대해 크게 착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임상적으로 우울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한 성향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눈앞의 현상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보통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일부 학자는 정신건강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로 심리적 통제감(객관적 근거가 없다 할지라도)을 서슴없이 꼽는다.
따라서 "우리는 왜 미래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의 기막힌 정답은 바로 통제를 통해 우리가 즐거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뭔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시간의 강을 따라 자신의 배를 조종해가는 것은 향하는 항구가 어디냐에 상관없이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 된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나는 '시간의 강'이라는 말을 웬지 또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강을 따라 조종해가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과 안녕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가 휠씬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선장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우리가 선장이 되고자 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 대로 배를 정착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자문할지도 모른다.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도착했을 때의 우리의 기분은 다르다.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좋은 목적지를 선택하게 하고 최악의 목적지는 피하도록 만들어준다. 우리가 선장이기를 원하고 또한 원해야만 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의 미래에는 좋은 미래도 있고 나쁜 미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시점에서 그 둘을 구별해 우리의 배가 더 나은 쪽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당연한 것이라 말할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명백하게 틀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틀렸다는 점을 이해하기가 더욱 힘들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배를 스스로 조종하겠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우리의 조종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배가 말을 안 듣거나 우리가 목적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망의 안경을 통해 보는 미래와 우리의 실제 미래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과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는 말은 그래서 사실인 것이다. 시간의 강을 따라 배를 조종해 가는 행위 자체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행복보다 더욱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