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과학에 대한 이중적인 심리적 태도

팔락 2011. 7. 21. 15:12

객관성의 공리에 기초해 있는 과학은 지난 3세기 동안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실천상에서의 자리이지 영혼상에서의 자리는 아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 위에 구축되어 있다. 현대 사회가 갖는 풍요로움과 힘, 그리고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더 큰 내일의 풍요로움과 힘에 인간이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은 모두 과학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또한, 어떤 동물종이 내린 최초의 '선택'이 그 자손 전체가 진하해나가는 미래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기원에 있어서 무의식적이었던 '과학적 실천'의 선택은 인류 문화의 진화로 하여금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다. 19세기의 과학적 진보주의는 이 길이 틀림없이 인간성의 경이적인 개화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반면, 오늘날 우리는 우리 앞에 암흑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본다.

 

현대 사회는 과학이 가져다 준 물질적 풍요와 힘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과학이 주는 가장 심오한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실상 거의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진리를 찾기 위한 새롭고 유일한 원천에 대한 규정, 윤리의 기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요구, 물활론적 전통과의 단적인 결별에의 요구, '옛날의 결속'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어떤 것으로 대신할 필요성의 제기 등등의 것을 말이다.

 

과학이 주는 모든 힘으로 무장하고 또한 그것이 주는 모든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바로 이러한 과학에 의해 이미 그 뿌리까지 괴멸된 가치 체계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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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그 완전한 의미에서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은 마침내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자신의 오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완전한 고독을, 자기 존재의 근본적인 이상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이 집시처럼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주는 그의 음악에 귀기울이지 않으며, 그가 꿈꾸는 희망에도, 그가 겪는 고통이나 그가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무관심해 할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죄를 규정할 것인가? 누가 선과 악에 대해 말할 것인가? 전통적인 체계들은 하나같이 윤리와 가치를 인간의 힘이 미치는 영역 너머에 두었다. 가치는 인간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 따라서 인간이 가치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인간은 가치란 인간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 스스로가 이제 가치의 주인이 되자, 모든 가치들이 우주의 무정한 공허 속으로 해체되어 사라지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제 인간은 마침내 과학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아니 차라리 과학으로부터 등을 볼리게 되었다고 말해야 하리라. 이제 인간은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파괴하는 과학의 끔찍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된 것이다.

 

--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