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화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빅토르 위고

팔락 2011. 6. 27. 00:06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는 1862년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 잘 팔리는지 알고 싶어 출판업자 허스트에게 보낸 편지다. 자신의 소설 판매량이 궁금했던 빅토르 위고는 편지를 썼는데 편지 내용은 단순히 '?'였다. 그에 대한 답장은 달랑 '!'였다. 독자 반응이 아주 좋다는 의미를 담은 가장 명쾌한 답변이었다.

 

그가 이토록 짧은 편지를 쓰게 된 이유에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한 위고는 외국에서 망명 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편지는 검열이 심했다. 그래서 검열을 피하면서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을 잘 아는 출판업자 허스트는 이심전심으로 답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간단히 중기와 후기의 그의 작품과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 1831)》는 위고에게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혀 주었다. 1841년에는 대망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그뒤 10여 년간 위고는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정치활동에 전념하였다. 그 원인으로는 희곡 《성주(Les Burgraves, 1843)》가 낭만주의 풍조에 싫증난 관객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패로 끝난 것과 가장 사랑하는 딸이 사고로 죽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던 열아홉 살의 맏딸 레오폴딘은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센 강 하류 빌키에에서 사위와 함께 보트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불행한 사고로 인해 위고는 6개월이나 펜을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좌절과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1848년 2월 혁명을 비롯한 주위 정세에 자극을 받아 위고는 인도주의적 경향을 더 한층 굳혔다. 1851년에는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여 국외로 추방을 당하였다.

 

그는 벨기에를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 섬과 건지 섬을 전전, 거의 19년에 걸친 망명생활을 보냈다. 이 망명생활은 결실이 풍부한 시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잡다한 일에서 해방되어 창작에 전념한 때문이다. 시집 《징벌(Les Châtiments, 1853)》, 《명상시집(Les Contemplations, 1856)》, 《세기의 전설(La Légende des siècles, 1859)》(제1집),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 《바다의 노동자(Les Travailleurs de la Mer, 1866)》 등 위고에 있어서 걸작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나왔다. 1870년 보불 전쟁에 의한 나폴레옹 3세의 몰락과 함께 위고는 공화주의 옹호자로서 민중의 열렬한 환호 속에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국민적 시인으로서 영예에 싸인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낸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은 《두려운 해(L'Année terrible, 1872)》, 《세기의 전설》(제2집, 제3집), 소설 《93년(Quatrevingt-treize, 1874)》 등이 있다. 그의 죽음은 국장의 예를 받았고 또한 유작도 수없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