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쓴 편지(리차드 도킨스) 2.
첫째, 전통이야. 사람들은 단지 오랜 세월 동안 똑같은 것을 믿어왔다는 이유를 뭔가를 믿어. 그것이 전통이지. 전통의 문제점은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진 지 얼마나 오래되었든 간에, 그것이 원래의 이야기와 똑같이 진실이든지 진실이 아니든지 하다는 거야. 네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꾸며낸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동한 전해진다고 해도 그것은 더 진실에 가까워지지 않아.
뭔가를 믿기 위한 이유가 되는 권위는 네가 중요한 누군가에게서 그것을 믿으라는 말을 들어서 믿는다는 뜻이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고, 사람들은 단지 그가 교황이기 때문에 그가 틀림없이 옳다고 믿지. 이슬람의 한 종파에서는 아야톨라라는 수염을 기른 원로들이 중요한 인물이야. 많은 젊은 이슬람교도들은 오로지 멀리 떨어진 나라에 있는 아야톨라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를 태세가 되어 있어.
물론 과학계에서도 스스로 증거를 보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이따금 있어. 나는 빛이 초속 30만 KM로 나아간다는 증거를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지. 그 대신 나는 내게 빛의 속도를 말해주는 책들을 믿어. 이것은 권위와 흡사해 보여.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권위보다 훨씬 더 났지. 그 책들을 쓴 사람들은 증거를 보았고, 원할 때마다 그 증거를 기꺼이 자세히 살펴보지. 그것은 아주 위안이 된단다. 하지만 성직자들조차도 성모 마리아의 몸이 천국으로 들렸다는 이야기에 어떤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아.
믿음의 나쁜 이유 중에 세 번째는 `계시`라는 거야. 네가 1950년에 교황에게 마리아의 몸이 천국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아마도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을거야. 종교인들은 참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지만 뭔가가 참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면, 자신들의 감정을 `계시`라고 부르지. 많은 종교인들이 그렇게 하지. 우리는 모두 이따금 내면의 감정을 품게 되고, 그것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어. 또 사람들끼리 정반대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어.
사람들은 때로 깊은 내면의 감정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곤 해. 그렇지 않으면 `아내는 나를 사랑해`같은 것들을 결코 확신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건 좋지 않은 논리야. 누군가가 너를 사랑한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을 수 있어.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와 온종일 함께 있어보면, 사소한 증거들을 많이 보고 들을 것이고, 그것들은 모두 한 데 모이게 되지. 그것은 성직자들이 계시라고 부르는 감정 같은, 순수한 내면의 감정이 아니야. 그 내면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바깥의 것들이 있어. 부드러운 목소리, 사소한 호의와 다정함, 그런 것들이 모두 진짜 증거야.
내면의 감정은 과학에서도 가치가 있지만, 나중에 증거를 살펴봄으로써 검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뒷받침될 때에만 그래. 과학자는 어떤 개념이 옳다는 `직감`을 가질 수 있어. 그것 자체는 무언가를 믿기 위한 좋은 이유가 아니야. 하지만 그것은 특정한 실험을 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증거를 살펴볼 시간을 낼 만한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어. 과학자들은 늘 내면의 감정을 이용해 착상을 얻지. 하지만 그 착상은 증거의 뒷받침을 받을 때까지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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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 누군가가 네게 뭔가 중요하게 들리는 것을 말하면, 스스로 생각해봐. 이것이 사람들이 증거가 있어서 아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단지 전통이나 권위나 계시 때문에 믿는 종류의 것일까? 그리고 다음번에 누군가가 네게 뭔가가 참이라고 말할 때, 이렇게 물어봐.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뭔가요?`` 그리고 그들이 좋은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그들이 말한 단어를 믿기 전에 아주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