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해리스(집단 사회화 이론=아이의 사회성은 부모보다 또래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를 비판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해리스가 자녀의 삶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면제시키려 한다고 비난한다. 아이가 나쁜 길로 빠져도 부모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해리스는 성인에게 삶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 즉 삶이 어렵다고 부모 탓만 하면서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해리스는 자식에게 닥친 모든 불행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이론으로부터, 그리고 아이에게 `잘자요 달님(동화)`을 읽어 주지 않고 살금살금 출근하는 어머니들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로부터 죄 없는 많은 어머니들을 구해 내고 있다. 그리고 해리스의 이론은 우리 모두에게 지역과 문화의 건강에 대한 집단의 책임을 부여한다. 그 속에 또래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양육은 중요하다. 해리스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부모는 자식에게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고,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의 행복에 대단히 중요하다. 양육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책임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 힘도 쥐고 있다."
둘째,부모와 자식은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신혼 부부 외에는 어떤 사람도 "그렇다면 내가 우리 남편이나 아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보살피는 것은 상대받의 인성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고 만족스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혹은 그녀)에게 쏟아 붓는 이 모든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라고 대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도덕적 명령이 아이에게 잘해 주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라. 당신이 늙었을 때 아이가 당신에게 잘해 주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에게 잘해 주어라."
훌륭한 성인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를 떠올릴 때마다 분노로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오래 전에 부모를 잃었지만 부모가 보여 준 사랑과 희생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추억에 젖어 드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부모는 자식이 그런 기억을 갖고 성장하도록 잘 키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