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기적인 유전자

팔락 2011. 4. 4. 12:10

왜 숲 속의 나무들은 그렇게 키가 클까? 단지 경쟁하는 나무들보다 높이 솟기 위해서다. 분별 있는 효용 목적이라면 나무들이 모두 키가 작은 상태로 머물러 있게 배려했을 것이다. 키가 작아도 똑같은 양의 햇빛을 받을 수 있으므로 굵은 줄기와 부피 큰 버팀대를 만들 필요가 없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그러나 모든 나무들이 키가 작다면, 자연선택은 다른 것보다 조금 더 크게 자란 변이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판돈은 커지고 게임에서 물러나지 않으려면 다른 것들도 거기에 따라야 한다. 모든 나무들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허황될 정도로 커질 때까지 그 게임은 치열해진다.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것이 바보스럽고 허황되다고 하는 것은 단지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견지에서 사고하는 합리적인 경제 계획 입안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효용 목적(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을 극대화하려고 한다)을 이해하고 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사람은 복지라고 하면 집단의 복지를 생각하고 `선(善)`이라고 하면 사회와 종의 미래, 또는 생태계의 선을 생각할 정도로 다소 친절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근본을 심사숙고해 도출한 신의 효용 목적은 슬프게도 그러한 이상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확실히 해두자. 유전자들은 때때로 개체 수준에서 이타적인 협력 자세를 갖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심지어 개체 자신을 희생하도록 하여 그들의 이기적인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가 집단의 복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지 유전자가 바라는 1차적인 목적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