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에 대한 많은 사람의 믿음이 효과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효과에 대한 많은 사람의 믿음이 효과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어떤 치료법으로 효과를 봤다는 사람이 많으면 효과를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문명에서 각기 사용되었던 치료법들은 대부분 버려졌고, 특히 서양의학을 지배했던 사혈요법은 임상시험이 개발되어 효과가 없고 도리어 해롭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폐기되었다. 조선시대에 중병을 앓는 환자들은 귀신을 원인으로 여겨 무당이나 판수에 의존했었는데 현재는 병은 귀신 때문이 아니라는 지식이 퍼지게 되면서 무당이 의료를 담당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재 다른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증언하는 치료법은 진짜로 효과가 있으리라고 쉽게 믿는다. 이런 생각이 틀렸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세크레틴 소동이 있다.
1996년 미국에서 자폐증을 앓던 아이의 어머니가 갑자기 아이의 증상이 급격히 개선된 것을 목격했다. 말을 못하던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언가 원인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는, 얼마 전 아이가 소화장애 때문에 병원을 갔던 일을 떠올렸고 의사에게 찾아갔다.
의사에게서 아이에게 사용한 약물이 세크레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그 약이 원인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크레틴은 소화장애를 진단할 때 사용하는 소화기 계통 호르몬으로 자폐증과 연관성을 찾기 힘들고, 세크레틴이 자폐증에 효과가 있다고 학계에 보고된 적도 없어서 의사들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이들의 자폐증에 대한 사용에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세크레틴을 처방하기를 꺼렸지만 그 어머니는 끈질긴 노력으로 환자단체 등을 통해 자신의 아이를 비롯한 자폐증 아이들이 세크레틴을 투여받게 했고, 효과가 있다는 보호자의 증언과 세크레틴을 사용한 의사들의 증례 보고들이 속속 나오게 되었다.
1998년 NBC 방송에서 세크레틴이 자폐증에 효과가 있다는 사례들을 방송한 뒤로 자폐증 아이를 둔 수많은 부모들이 세크레틴 치료를 받으려 해 대혼란이 빚어졌다. 외국을 통해 암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수천달러로 값이 치솟기도 했다. 사용하는 사람이 늘수록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자폐증 아이들에게 사용했을 때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임상시험 근거가 없는 상황을 우려했고, 신속히 임상시험을 실시해 1999년 말 NEJM에 결과가 발표되었다. 세크레틴을 투여 받은 아이들의 증상이 개선되었는데, 위약을 투여 받은 아이들도 그만큼 증상이 개선되었다. 세크레틴의 효과는 위약효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연구 하나만으로는 치료법을 갈망하는 보호자들의 광풍을 잠재울 수 없었고, 추후 수많은 임상시험들을 통해 동일한 결론이 반복되면서 점점 세크레틴에 대한 미신은 사그라졌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는 글루코사민이 있다. 한동안 글루코사민이 관절에 좋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 단지 위약효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그 지식이 점점 퍼지면서 글루코사민의 인기가 사그라졌다.
치료를 받았다는 기대감, 증상의 정도가 일정치 않은 질환에서 우연히 증상이 덜해지는 시기가 맞물리는 경우, 치료가 없어도 저절로 낫는 질병, 실제로는 질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걸렸다고 오인한 경우, 치료 과정에서 치료법 자체가 아닌 치료자의 조언 등 도움이 될 수 있는 외적인 요인들, 함께 받고 있던 다른 치료법 등으로 인해 경험만으로는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 판별해내기 어렵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학 전문가들도 자신의 몸을 통한 경험만으로 진짜로 효과가 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의학 전문가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라면 자신의 경험이 효과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정도다.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효과를 판별할 신뢰할만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쓸모없는 치료법에 돈을 낭비하거나, 엄밀한 임상시험으로 검증된 최선의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강석하 kang@i-sb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