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미신과 진실(펌)
[번역]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미신과 진실
※ 이번 글은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인 스티븐 노벨라 교수가 지난 11월15일 SBM 블로그에 기고한 글로,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잘못된 미신을 논파하는 내용입니다. 원문 제목은 “Placebo Myths Debunked”입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에서 번역했습니다.
원문 출처 https://sciencebasedmedicine.org/placebo-myths-debunked/
사람들은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로 인해 잠재적인 치료법에 대해 조잡한 생각을 하게 되며, 대체의학으로 인해 이 문제는 더욱 악화되어 왔다.
소위 ‘보완대체의학(CAM)’ 지지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관습적인 치료법이 제대로 된 테스트를 받는다면 그 효과가 결국 과학적으로 검증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효과적인(effective)’ 이라는 단어는 의학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해당 치료법이 통제되고 대조군 처리가 된 임상시험으로 비교했을 때, 플라시보 대조군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년에 걸친 수천 번의 연구 결과, 일부 인기 있는 CAM 치료법(동종요법, 침술, 레이키 등)은 플라시보에 비해 효과가 우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 치료법의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 수긍하지 않은 CAM 추종자들은 ‘골대 옮기기’ 수법을 사용했다. 이제 그들은 플라시보 효과도 진짜(real) 치료라고 주장한다. 플라시보 효과만 발생시키더라도 해당 치료법은 효과가 있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그들은 플라시보에 대한 일반적인 미신을 홍보하고 증폭시킨다. 이번 글에서는 그 미신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검증하겠다.
미신 #1 – ‘어떤’ 플라시보 효과인가
플라시보와 관련한 가장 압도적인 미신은 플라시보 효과가 단 한 가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있을 수 있는 착각이다. 과학자들조차도 플라시보 효과를 지칭할 때 정관사인 ‘the’를 앞에 붙이며 단수형으로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언급하는 플라시보 효과는 임상시험의 플라시보 대조군에서 측정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그 효과(아무 치료도 하지 않은 상황과 플라시보 대조군에서의 효과 차이)는 해당 연구에서의 플라시보 효과가 된다.
하지만 그 차이를 만드는 플라시보 효과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상태가 호전됐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들이 해당 플라시보 효과에 기여한다. 이들을 살펴보자면, 우선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가 있다. 증상이 나타난 후에 몸은 해당 증상이 나타나기 전 상황으로 저절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기복이 심한 질환을 앓고 있다면, 그 질환의 상태가 가장 악화되었을 때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결과적으로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구별되는 것으로는 ‘질병의 자기제한적(self-limiting) 본질’이 있다.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리면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상태는 호전될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상태 개선으로 이어진다. 주관적인 증상을 자각하고 설명하는 경우에도 편향(bias)이 작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더 나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며, 자신이 받는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의사나 연구자를 기쁘게 해주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추가로, 연구자들과 의사들은 자신들의 치료가 효과가 있기를 원한다.
또한 치료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불특정 다수의 특수한 효과들이 생길 수 있다. 희망은 매우 긍정적인 감정이며, 그것만으로도 주관적인 기분이 향상될 수 있다. 임상 시험 대상자들은 의학적인 관심을 받고 있고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더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다른 치료를 받더라도 더 잘 순응할 것이다.
연구의 대상이 된 치료법 자체에도 일부 특이적이거나 비특이적인 몇몇 요소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레이키(기 치료)나 침술 치료를 받은 후에 상태가 호전됐다고 느끼는 환자들은 치료 도중에 음악을 듣거나 좋은 향을 맡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로 인한 긴장 완화 효과가 얼마나 작용했을까? 한의학에서 주장하는 ‘경혈’에 진짜로 침을 찌르는지 여부가 중요할까(답은 아니다)?
미신 #2 – 플라시보 효과가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가 단 하나 뿐이라고 여기면 그 플라시보 효과가 정신력으로 인한 신체적 치유 효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사실 플라시보 효과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연구자들은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치유(healing)’라는 어휘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사실 치유의 정의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생물학적 회복(biological repair)이 이뤄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임상시험에서 상태 호전의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지표들을 구분한다. 주관적인 개선이란 환자 개인이 어떻게든 좋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환자가 자신의 통증에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반면 객관적인 지표는 혈압, 생존율, 종양 크기 등 측정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암 연구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플라시보 치료법이 주관적인 증상을 약간 개선시키지만 암 자체는 호전시키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플라시보 효과는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환상(illusory)으로, 편향된 보고나 평균으로의 회귀를 통한 상태 개선을 실제 치료 효과라고 오인하는 것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비특이적인 효과로, 시술사의 연민이나 휴식, 스스로를 더 잘 관리하거나 의사의 충고에 잘 따르는 일 등이 있다. 세 번째 카테고리는 정신적인 개입만으로 나타날 수 있는 효과들이다. 스트레스, 우울증, 걱정, 통증 인식 및 이와 유사한 주관적 증상이 여기 해당한다. 실제로 몸과 마음은 두뇌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신경계나 호르몬을 통해 뇌와 접촉하지 않는 마법적인 생물학적 또는 생리적 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신 #3 – 동물과 아기들은 플라시보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
이 미신은 ‘플라시보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효과 있는 치료를 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믿음이 전제조건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는 동물들과 아기들의 경우에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렇기에 동물들과 아기들이 느끼는 상태 개선은 해당 치료법 자체의 효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틀렸다. 당사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믿는지와 관계없이 플라시보 효과를 발생시키는 요인은 많다. 이를테면 평균으로의 회귀, 질병의 자기제한적 본질, 비특이적인 효과, 동시에 실시하는 다른 치료로 인한 효과 등이 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아기나 동물의 상태가 실제로 개선되었는지를 누군가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편향된 자각 또는 보고에 취약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해당 치료법에 대한 오인된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동물이나 아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역시 대조군 설정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해당 치료의 결과를 평가하는 사람에게도 맹검(blinding) 처리가 필수적이다.
미신 #4 – 기발한 치료법 또는 대체요법들의 경우 플라시보 효과가 더 크다
대체요법 시술사들은 효과적이지 못한 치료법을 홍보하고 정착시키겠다는 집념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플라시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자신들의 전문 분야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연구 결과 이 치료법이 플라시보에 비해 효과가 없다고?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이끌어내는 데에는 내가 전문가라고.” - 바로 이것이 ‘플라시보 의학’의 논리다.
첫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위에서 반박했다. 그리고 대체요법사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더 잘 이끌어낸다는 두 번째 주장도 근거가 없다. 과학적 근거들은 모든 치료들은 다소간의 플라시보 효과를 만들어내며 주로 기대되는 결과가 무엇인지에 영향을 받는다. 더 주관적이고 분위기 같은 변수에 영향을 잘 받을수록 측정되는 효과는 커진다.
대체요법사들이 플라시보 효과가 존재한다고 해서 효과가 없거나 사이비과학적(pseudoscientific)인 치료법의 사용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검증된 과학적 치료법을 통해서도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환자를 속이지 않는 플라시보 효과들도 있다. 비특이적이고 통계적인 영향들을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가능한 반면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유효하지 않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해 할 것이고 그들의 증상에 대한 지각에도 편견을 일으킬 것이다. 사이비과학적 치료법들은 아무리 플라시보 효과로 정당화를 시도해도, 환자를 기만하면서 환자의 자율성을 침해할 뿐이다.
추가 연구가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는 환자와 시술사 간의 치료적 관계(therapeutic relationship)다.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면 측정되는 플라시보 효과를 강화시킬 수도 있고, 어쩌면 측정에서의 또 다른 편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동의와 자율성에 관한 윤리적 요구 사항을 준수하며, 환자와 치료자 간의 긍정적인 치료적 관계와 과학적 치료법을 통해서 유용한 플라시보 효과들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