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싫어하면, 기다려주세요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가 싫어하면, 기다려주세요
초등학교 2학년인 민철이는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는다. 보낼 수가 없다. 태권도학원도, 피아노학원도 안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민철이는 뭔가 새로 배우는 것, 낯선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민철이처럼 초기 긴장감이 높은 아이는 100% 잘할 것 같은 확신이 들지 않으면 대개 안 하려고 한다. 타고난 불안과 예민함이 높은 경우로, 뭐든 시작하기가 어렵다. 반면 어떻게든 시작하고 나면,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는 특징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절대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억지로라도 시키려 든다. 어릴 때는 봐줬지만 이제는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혼내기까지 한다. “2학년이나 됐으면서 왜 그래? 너 바보야? 봐봐! 다른 애들은 다 잘하잖아. 여기 너 잡아먹는 사람이 누가 있어? 계속 이러면 선생님이 너 예쁘다고 하겠어?” 하면서 별소리를 다 한다. 부모 자신이 불안하니까 아이를 설득하다가 협박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아이의 초기 긴장감은 더 높아진다. 그 초기 긴장감 때문에 아이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실패하면, 부모는 “어휴, 돈만 버렸네” 할 것이고, 아이는 실패의 경험이 쌓여 스스로에게 ‘난 안 돼’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초기 긴장감이 높은 아이들은 최대한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이때 부모는 정말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 한다. 피아노학원에 보내려 한다고 치자. 아이는 역시 “안 해” 할 것이다. 이때 “그래.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하거나 “이 학원이 싫어? 엄마가 다른 학원 알아볼 게” 하는 것은 모두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안 하려고 한다고 아무 경험도 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의 초기 긴장감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또 다른 학원을 알아봤자 어차피 새로운 것은 마찬가지라 아이가 간다고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네가 힘들어하면 당장은 안 할 거야. 가서 구경만 해보자”라고 하자. 아이가 구경도 안 하려고 하면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는 기회를 만든다. “저기가 엄마가 전에 말한 곳인데, 지금 보니까 아이들이 참 많이 다니는구나.” 이렇게만 말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언제나 “억지로는 안 시켜. 하지만 너도 배우긴 해야 해”라고 말해둔다. 그래도 아이가 “안 해” 그러면, “그래, 엄마도 억지로 안 시킬 거야”라고 다시 말해준다. 이렇게 한 달 내지 두 달을 보낸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한번 가볼까”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놓고도 학원에 들어가서는 얼음처럼 우두커니 있을 수 있다. 그러면 학원 교사에게 그냥 내버려두라고 부탁한다. 미리 교사에게 우리 아이는 이러저러하니 이렇게 도와달라고 얘기를 해두는 것이 좋다. 초기 긴장감이 높은 아이에게 교사가 “너 여기 앉아볼까? 저기 가서 쟤랑 저거 해볼래?” 하면 계속 새로운 자극이 오는 거라 불안감이 더 높아진다. “잘 보고 있어. 그냥 편안하게만 있어” 하고 내버려두면, 새로운 자극이 오지 않으니까 아이가 그 자리에서 긴장을 추스르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하루를 경험하면 ‘생각만큼 고통스럽지 않네. 생각보다 별것 아니네’ 하면서 자신의 초기 긴장감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상황을 파악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스스로 진정해 본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이런 경험이 많아져야 아이는 ‘나는 처음에는 긴장해서 하기 싫지만, 일단 해보면 괜찮아져’라는 자기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런 아이에게는 “배우긴 배워야 하는 거야” 식의 아주 장기적인 지침을 줘야 한다. 아이가 “난 절대 태권도는 안 해” 하면, “그럼, 다른 운동이라도 해야 할 거야. 운동을 하긴 해야지”라고 장기 지침을 주고 넘어간다. 이렇게 한다고 아이가 초기 긴장감이 없는, 혹은 낮은 아이가 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성향이 부정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성향에 맞춰 잘 발달하고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