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는 답이 없다
자연에는 답이 없다
건강의학상식 중 널리 퍼져있는 착각 중 하나는 병을 치료하는 답이 자연에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한의학 개념도 그 중 하나다. 꼭 한의학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에 병을 치료하는 약이 있으리라고 믿고 약초나 버섯 등을 복용한다.
옛날 사람들은 특정한 성분을 추출하거나 화합물을 합성해서 약을 제조할 기술과 지식이 없었다. 때문에 먹어도 죽지 않는 음식이 아니고서는 약으로 쓸 것이 없어 ‘약식동원’이 옳은 말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르게 영양 섭취가 불충분했기 때문에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을 먹으면 특정 영양소 결핍으로 인한 증상이 치료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영양소를 충분히 고르게 섭취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더 먹는다고 해서 병이 치료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몇몇 질병은 음식을 제한해야 호전된다.
현대에 사용되는 의약품 중에서 천연물을 그대로 가공해 만드는 것들은 극히 드물다. 생물에서 발견된 특정한 성분을 추출하고 농축하거나 같은 성분을 화학공학 기술을 이용해 똑같이 합성하거나 자연계에 없던 물질을 합성해서 사용한다. 즉, 21세기에 사용하는 약 중에는 음식과 같은 것이 거의 없어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항생제는 음식이 아닌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해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는 인체에 감염한 세균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단 돈 천원에 두 명이 뱃속에 기생하는 회충을 없애버릴 수 있지만 옛날에는 회충을 뱃속에서 몰아낼 방법이 없었다.
항암제 탁솔(taxol)은 주목나무에서 발견되었고,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은 개똥쑥에서 발견되었지만 주목나무나 개똥쑥을 먹어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물에 약효를 가진 성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약효를 발휘할 만큼 충분히 섭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그 식물에 함께 들어있는 여러 독소 때문에 많은 양을 섭취하기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약초 따위를 먹어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약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생물들을 샅샅이 뒤지며 무수한 성분들을 시험해왔다. 약 5천에서 1만 가지 성분 중 하나 꼴로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는 종은 없다. 자연에 답이 있으리라는 착각을 버리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풀뿌리를 캐서 달여 먹는 헛수고는 그만 두자.
강석하 kang@i-sb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