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형주]이론 중심 대학원 교육의 맹점
[동아광장/박형주]이론 중심 대학원 교육의 맹점
논문을 잣대로 한 이론가 배출 구조… 문제해결 연구 허술
평생직업 사라지는 변화의 시대 눈앞에 과연 우리의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라는 이변이 일어나자 사후 분석의 폭풍이 몰아쳤다. 트럼프 승리를 예측했던 소수의 분석가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인사가 됐지만, 빅데이터 방식의 선거 예측으로 최고의 성세를 구가하던 네이트 실버의 실패는 한동안 회자될 얘깃거리다. 2012년 대선에서 미국 50개 주의 주별 선거 결과를 모조리 맞혔던 그가 아닌가.
결과만 놓고 본다면, 단순 클릭 수로 예측한 게 맞았다. 숨어있는 트럼프 지지자들(샤이 트럼프·shy Trump)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상대 후보 기사를 클릭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 관련 링크를 더 클릭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오히려 수집한 데이터에 여러 가지 보정을 가한 복잡한 예측 모델은 샤이 트럼프를 놓쳤다.
숫자에 불과한 데이터에 숨겨진 함의를 읽는다는 건 이렇게 어렵고, 남이 해석해 주는 대로 데이터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예전의 독재자는 폐쇄 사회의 유지와 데이터의 조작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의 통치가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고 있는지는 데이터에 분명히 나타나니까.
하지만 데이터 접근이 자유로운 글로벌 사회에서는 데이터의 조작보다는 데이터 해석의 임의성이 더 문제가 된다. 아마도 21세기 신흥 종교의 교주라면 사람들의 이런 막막함을 이용해서 각종 데이터를 그럴듯하게 해석하고 신도들에게 제시해 주는 사람이지 않을까. 이런 휘둘림을 막아주는 수학 교육이 논리적,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가진 시민 교육의 핵심인 이유다. 우리 교육은 이런 능력을 제공하고 있는가.
직업의 탄생과 소멸이 빈번해진다는 경고음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현재의 초등학생은 평생 5번의 일자리 변동을 겪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평생 일자리의 개념이 빠르게 사라지고, 끊임없이 전문성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온라인에서 수업을 듣는 무크(MOOC)가 학습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고 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포함하는 평생교육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학교의 역할과 존립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 이공계 박사 학위자의 17% 정도만 산업계로 진출한다. 수학 분야의 경우는 1.8%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학원 교육이 논문을 주요 척도로 하는 이론가 배출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을 말한다. 교수의 임용이나 승진 등에서도 이론가에게 절대 유리한 구조다. 최근에는 교내 창업을 장려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론가로서의 잣대를 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연구 분야를 넘어서 산업 현장이나 타 분야의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경우는 그 결과물이 논문의 형태로 가시화되지 않는 한 학문적 성과물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러한 사농공상의 가치체계는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교 교육에까지 결부되어 아이들의 진로 설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자연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이론 연구의 가치야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세상의 복잡다단한 문제의 해결도 연구자들이 관심 가져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론가에 대비되는 문제 해결형 연구의 가치에 생소한 우리 대학의 가치체계는 각종 평가제도와 국가 연구비 시스템을 통해서 겹겹이 보호되고 있어서 변화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업을 갖고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은 복잡다단할 뿐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특정 과목 지식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의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된 신입 직원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지식을 습득할 것이고, 이전에 알았지만 함께 접하지는 못했던 다양한 분야와 만날 것이다.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원들은 연령과 지역, 배경과 전문성이 다양할 것이다. 이렇게 일자리에서 한 개인은 문제 해결을 위해 최적화된 조직에 속해 일한다. 최근에 서울에서 만난 미국상공회의소의 제이슨 티스코 교육일자리연구소장은, 미래의 대학은 이런 일자리의 조직 형태를 유사하게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학과의 칸막이 대신 문제 해결형 조직의 형태로 이합집산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의 지식을 묶는 힘, 서로 다른 주장들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힘이 통찰의 능력이다. 이는 미래 일자리에서의 생존에도 꼭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 되려는 모양이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