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개, 돼지’를 인간으로 만든 과학
[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개, 돼지’를 인간으로 만든 과학
―뉴턴 물리학의 사회적 의미
진부하고 경박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티무르? 나폴레옹? 철학자 볼테르는 망설임 없이 ‘아이작 뉴턴’이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숭배해야 할 사람은 폭력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우리 정신을 정복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볼테르가 활동하던 18세기 유럽에서 뉴턴은 분명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뉴턴이 확립한 물리학은 천상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해 주었다. 우주에는 법칙이 분명 존재했고, 이것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다. 적어도 신이 자연 현상에 기적과 같은 형태로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스피노자와 존 톨런드는 성서를 무시하고 자연 그 자체를 신으로 보는 ‘범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과학은 종교 개혁의 혼란을 겪던 타락한 중세 교회에 타격을 주고, 이성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로써 계몽주의라 불리는 서양의 근대 사상이 17, 18세기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계몽주의는 인간 삶의 목적이 내세(來世)가 아닌 현세의 행복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세의 행복은 과학적 지식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베이컨이 말했듯이 ‘아는 것이 힘’ 아닌가. 계몽은 무지와 미신과 같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계몽을 하면 할수록 인간은 도덕적으로 변하고, 세계는 진보한다. 물론 지금 우리는 계몽주의의 한계를 알고 있다. 계몽의 주체는 이성이며, 이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으로 당시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던 특권주의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계몽주의는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고 믿는 자유, 평등, 이성 등은 과학 혁명에서 비롯된 계몽주의에 그 근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보편적 가치가 아주 최근에야 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귀족과 평민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때로 평민은 ‘개돼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시각에서 신분제는 난센스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런 당연한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보여준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었다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과 같지 않았다. 백인들이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흑인은 여전히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끝내고 100년이 지나서야 노예해방전쟁을 치르게 된다. 백인 남성들이 평등을 위해 싸우는 동안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백인 여성보다 흑인 남성이 먼저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 한 예다.
인류의 근현대사는 인간 평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투쟁의 역사다. 그런데 인간은 왜 평등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오히려 용감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거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이유는 생물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각 개인이 가진 문화적 사회적 겉모습을 벗고 벌거벗은 호모 사피엔스로 섰을 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지하철 정비노동자 사이의 차이를 말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유전자 수준으로 가서 보면 차이를 구분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모든 인간의 유전자는 다른 사람과 평균적으로 99.5% 정도 같다고 한다. 유전자만 봐 가지고는 두 사람을 차별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유전자까지 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평등도 문제가 된다. 침팬지의 유전자는 인간과 99%가 같다. 참고로 남자와 여자도 유전자의 99%가 같다. 인간의 평등이 생물학적인 근거 때문이라면, 우리는 이제 평등의 범위를 다른 생물종(種)으로 넓혀야 할 시점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한 말이다. 과학 혁명에 이은 계몽주의,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전쟁.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 인류는 처절한 대가를 치렀다. 서양 사회가 18세기에 치른 계몽주의의 혼란을 우리는 이제 겪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이런 전근대적 발언을 두고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다. 동성애자 차별, 성 차별, 여성 혐오, 병역 거부자 차별, 외국인 혐오 등을 없애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