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다른 시공간 잇는 우주 지름길 ‘웜홀’, 아직 발견 안돼

팔락 2016. 5. 17. 10:05


다른 시공간 잇는 우주 지름길 ‘웜홀’, 아직 발견 안돼

최고의 SF영화 ‘인터스텔라’… 비과학적 ‘옥에 티’는


갈수록 산소가 줄어들어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게 된 지구. 때마침 토성 근처에서 웜홀(다른 시공간을 잇는 우주구멍)이 발견된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웜홀을 타고 심(深)우주로 떠나는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현대 우주물리학의 성과를 묘사한 사상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는 ‘인터스텔라’는 웜홀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발표한 저명한 물리학자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어느 누구도 비과학적이라고 ‘태클’을 걸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을 넘나드는 ‘인터스텔라’에는 비과학적인 ‘옥에 티’가 있다.


○ 웜홀 존재 아직 발견 안 돼

빛까지 삼켜버리는 강력한 중력 때문에 까맣고 어두워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블랙홀은 영화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공처럼 묘사된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밝은 빛을 내뿜는 블랙홀의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라며 “중력렌즈 효과 때문에 블랙홀 뒤편의 별빛이 모여 마치 블랙홀이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력렌즈 효과는 중력 때문에 빛이 직진하지 못하고 굴절하는 현상을 말한다. 블랙홀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빛나는 띠도 물질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웜홀은 우주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 교수는 1988년 회전하는 거대 블랙홀이 존재하면 웜홀을 통해 우주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손 교수의 가설에 등장하는 웜홀은 우주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물리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는 웜홀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장치라는 건 근본적인 옥에 티”라고 말했다.


블랙홀 테두리의 밝은 빛은 중력렌즈 현상 때문에 블랙홀 뒤편의 별빛이 왜곡돼 나타난 것이다.


○ 블랙홀의 중력 거스르는 우주선은 불가능

지구를 출발한 탐사대가 웜홀을 지나 처음 도착한 곳은 거대 블랙홀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이다. 주인공들은 이 행성에서 3시간 정도 머문 뒤 우주선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우주선에서의 시간은 이미 20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블랙홀의 어마어마한 질량이 시간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블랙홀의 표면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서는 탈출 속도와 빛의 속도가 같다”면서 “블랙홀 바깥에서 사건의 지평선을 보면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서 옥에 티는 사건의 지평선 바로 옆까지 자유롭게 비행하는 우주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강한 중력을 이겨내고 원하는 경로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주선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영화에서 블랙홀의 크기가 나오지 않아 우주선에 필요한 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면서도 “영화에서 묘사되는 수준의 비행이 가능할 정도라면 부족한 산소를 늘리고 열악한 환경을 복구하는 등 지구를 구하는 데 이 에너지를 쓰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 블랙홀 안에서 바깥으로 정보 전송은 허구

영화에서 통일장이론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로 등장한다. 통일장이론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폭발(빅뱅) 직전의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블랙홀을 지나며 “저 안(블랙홀)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송 연구원은 “블랙홀 내부는 빅뱅 직전의 순간과 닮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내부 상태를 안다면 통일장이론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블랙홀 내부에서 얻은 정보를 어떻게 바깥으로 내보내느냐는 점이다. 일단 들어가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는 블랙홀에서 정보를 전송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유일한 가능성은 중력이다. 영화에서도 중력을 이용해 정보를 보낸다. 김 교수는 “블랙홀 안에서 중력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설정은 허구”라며 “통일장이론을 완성한다고 해도 이것으로 인해 인류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