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치료 효과의 근거가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팔락 2015. 4. 11. 11:41

'치료 효과의 근거가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강석하|2015.04.08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진행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기존 발표된 임상시험 논문들을 종합 분석해 보다 고차원의 결론을 도출하는 연구방법) 60편 중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논문 단 한 편만 효과 있다는 결론이었다는 <청년의사>의 보도에 반박하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주장이 <민족의학신문>에 보도되었다.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효과가 없다는 투로 악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조정훈 위원이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급성 발목 염좌에 대한 침 치료 효과 논문을 언급했다. “‘해당 중재가 치료에 효과적이지 않다(clear evidence of lack of benefit)’ 또는 ‘근거를 지지하지 않는다(does not support evidence)’”라고 표현해야만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며 해당 논문은 효과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지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못 박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서양의학의 많은 SR 논문에서도 학술적 표현인 ‘근거가 불충분하다’라는 결론은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며 둘러댔다.

 

과연 한의학연구원 연구진(영국 엑스터대학의 Edzard Ernst 박사도 저자로 참여)이 상투적으로 결론을 흐지부지 맺은 것인지 해당 논문 초록의 결과 부분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자.

 

The currently available evidence from a very heterogeneous group of randomised and quasi-randomised controlled trials evaluating the effects of acupuncture for the treatment of acute ankle sprains does not provide reliable support for either the effectiveness or safety of acupuncture treatments, alone or in combination with other non-surgical interventions; or in comparison with other non-surgical interventions. Future rigorous randomised clinical trials with larger sample sizes will be necessary to establish robust clinical evidence concerning the effectiveness and safety of acupuncture treatment for acute ankle sprains.

 

급성 발목 염좌에 대한 침술의 치료효과에 대한 다주 다양한 그룹의 무작위화된 또는 준-무작위화된 임상시험들로 얻어진 현존하는 증거들은 침술 단독 시행 또는 다른 비수술적 치료와 침술 치료의 병행 또는 다른 비수술적 치료와의 효과 비교에서 침술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급성 발목 염좌에 대한 강력한 임상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추후의 큰 샘플 사이즈의 엄격한 무작위 임상 시험들이 필요하다.

(Kim TH, Lee MS, Kim KH, Kang JW, Choi TY, Ernst E. (2014) Acupuncture for treating acute ankle sprains in adult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4 Jun 23;6:CD009065. )

 

문장을 있는 그대로 풀어쓰면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체의학 연구자들은 상상의 존재인 경락에 상상의 존재인 기가 흐른다는 순전히 비과학적인 생각이라도 임상시험을 하고, 그 결과들을 종합해 체계적 문헌 고찰 연구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하루 세 번 우리집이 있는 방향을 보고 절을 하면 당뇨병이 낫는다”(과학적으로 허무맹랑하기는 기가 어쩌고 경락이 어쩌고 하는 소리도 이와 똑같다.)라고 주장을 했는데 몇몇 사람들이 임상시험을 했다. 당연히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겠지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가 있다면 연구를 엉성하게 설계해 의도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도록 설계해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 샘플 사이즈가 작으면 우연히 효과가 있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저런 연구들이 대체로 효과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할텐데 이런 연구들의 질이 높지 않고 수가 적으면 체계적 문헌 고찰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연구들이 있지만 효과가 없다는 강력한 근거를 위해서는 큰 샘플 사이즈의 엄격한 무작위 임상 시험들이 진행돼야 한다.”고 마무리 지을 것이다.

 

즉, 과학적 근거가 없는 대체의학 연구에서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환자나 일반인 입장에서는 효과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한의학연구원 관계자는 또 현대의학(서양의학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옳지 않다)에 대한 연구에서도 그런 식의 결론이 자주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경우라도 과학적 근거가 없고 효과가 있다는 증거도 없다는 대체의학 치료법과 과학적 근거는 있지만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는 현대의학 치료법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과다출혈 환자에게 수혈을 통해 피를 보충하는 치료의 근거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체계적 문헌 고찰의 맹점이 드러난다. 그 어떤 의사도 과다출혈로 죽기 직전의 위급환자들을 상대로 수혈 그룹과 소금물 대조군 그룹을 무작위로 나눠서 임상시험을 해서 수혈의 ‘임상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체계적 문헌 고찰 방식에서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없어서 수혈의 치료 효과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물론 학자들은 수혈의 ‘임상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대체의학은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임상적’ 근거에만 의존해야 하지만 현대의학은 그렇지 않다. 현대의학에서도 새로 개발된 수술법이 기존의 수술법보다 효과가 좋은지 처럼 서로 다른 치료법의 효과를 비교하거나 원래 쓰던 약을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응용시켜 연관성이 있는 다른 증상에서 쓸 때 효과가 있는지 같은 연구는 임상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 경우들도 데이터가 적을 때에는 체계적 문헌 고찰의 결론에 똑같이 “강력한 근거를 위해서는 큰 샘플 사이즈의 엄격한 무작위 임상 시험들이 진행돼야 한다”고 쓰여질 것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있었지만 임상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최종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의학에서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결론과 대체의학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결론은 동급이 아니다. 현대의학에서 임상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와 개연성은 있는데’ 임상적 근거가 확증되어야 한다는 의미고 대체의학에서 임상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나 개연성 따위는 없지만’ 임상적 근거라도 가지고 와서 효과를 주장하라는 소리다. 만일 한의학연구원에서 “그 기준이면 양의사들 논문도 근거 없어”라고 민족의학신문에 쓰인 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한의학연구원의 자질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코크란 리뷰에 침술 논문과 같은 해에 같은 대체의학 범주에 발표된 인공호흡기 환자에 대한 음악치료 효과에 대한 논문의 결과를 비교해보자.

 

This updated systematic review indicates that music listening may have a beneficial effect on anxiety in mechanically ventilated patients. These findings are consistent with the findings of three other Cochrane systematic reviews on the use of music interventions for anxiety reduction in medical patients. The review furthermore suggests that music listening consistently reduces respiratory rate and systolic blood pressure. Finally, results indicate a possible beneficial impact on the consumption of sedatives and analgesics. Therefore, we conclude that music interventions may provide a viable anxiety management option to mechanically ventilated patients.

 

업데이트된 이번 체계적 문헌 고찰은 인공호흡기 환자의 불안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 발견은 환자의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한 음악 치료 활용에 관한 다른 세 편의 코크란 체계적 문헌 고찰 결과와 일치한다. 이번 문헌 고찰은 거기에 더해서 음악이 환자의 호흡과 수축기 혈압을 지속적으로 안정시켜준다는 점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결과들은 진정제와 진통제 사용량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음악 치료가 인공호흡기 환자에 대한 불안 치료의 실행 가능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Bradt J, Dileo C. (2014) Music interventions for mechanically ventilated patient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4;12:CD006902. )

 

여기서는 일관되게 효과를 언급하며 불안 치료에 대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효과와 안전성이 불분명하다며 “큰 샘플 사이즈의 엄격한 무작위 임상 시험들”의 효과 있다는 결과들을 가져오라는 침술 논문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한의학이 근거 없이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는 결론보다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더 영향력이 크다. 효과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건 당연히 그랬어야만 해야 하는 것이고, 효과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그 짓을 멈춰야하니 말이다. 연구를 해봐도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없는 침 치료를 받기 위해 아픈 다리를 이끌고 한의원에 가는 헛수고를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의학연구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한방 옹호와 홍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한의학의 자존심을 세우고 한의사들을 만족시켜주는’ 연구가 아니라 ‘한의학을 주제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필요로 한다. 한의원에서 하고 있는 짓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있으면 숨기고 변명하기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국민들에게 알려서 최선의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강석하 kang@scientificcritics.com